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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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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OSITION파리 식물원 - 소리와 빛의 쇼

09/12/2019

성공적이었던 « Espèces en voie d’illumination » 이라는 기념비적인 조명 구조의 첫 전시에 이어, « Muséum d’histoire naturelle » 은 파리 식물원에서 올해 11월 18일부터 2020년 1월 19일까지 제 2의 기념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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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이었던 « Espèces en voie d’illumination » 이라는 기념비적인 조명 구조의 첫 전시에 이어, « Muséum d’histoire naturelle » 은 파리 식물원에서 올해 11월 18일부터 2020년 1월 19일까지 제 2의 기념비적인 조명 구조의 전시인 « Océan en voie d’illumination » 이 열였다.

올해는 해양을 주제로 하여 4가지의 해양 환경을 여행하며 약 50가지의 조명 구조로 된 여러 동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흰동가리, 범고래, 백상아리와 귀신고기과의 대표적인 동물들을 볼 수 있으며 그 중 일부는 높이 10미터와 가로 30미터의 큰 크기로 전시 되어있다. 이 전시는 바다의 아름다움과 연약함의 인식을 촉진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Jardin des Plantes

위치 : 5 Rue Cuvier, 75005 Paris

영업시간 : 매일 오후 6시부터

기간 : 2019년 11월 18 ~ 2020년 1월 19일 

Pour plus d'informations consultez le site in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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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최대 규모 레스토랑, La Felicità

31/07/2018

파리의 이탈리안 맛집 Big Mamma 그룹의 공동 창업자, 빅터 러거 (Victor Lugger)와 티그란 세이두 (Tigrane Seydoux)가 스타트업 인큐베이터인 스테이션 F에 천 개의 좌석과 5개의 주방, 3개의 바, 푸드마켓, 비어 가든이 마련된 초대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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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이탈리안 맛집 Big Mamma 그룹의 공동 창업자, 빅터 러거 (Victor Lugger)와 티그란 세이두 (Tigrane Seydoux)가 스타트업 인큐베이터인 스테이션 F에 천 개의 좌석과 5개의 주방, 3개의 바, 푸드마켓, 비어 가든이 마련된 초대형 레스토랑 La Felicità를 오픈했다.  

 파리의 공립 경영대학원 (HEC) 를 졸업한 30대 청년 CEO 빅터와 티크란의 얘기를 들어봤다.

 

3년간 여러 개의 레스토랑을 오픈했는데, 평가하자면?

- 우리가 정말 엄청난 모험을 하고 있다는 것과 우리 팀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낀다. 첫 번째 레스토랑을 오픈할 때나 지금 현재, 7번째를 오픈할 때도 항상 똑같이 흥분된다.

 

새로 준비 중인 프로젝트가 있나?

- 지금은 La Felicità 오픈에만 주력하고 있다. La Felicità는 음악 공연과 다양한 이벤트가 열리는4500m2 규모의 아주 큰 푸드마켓이다. 우리 그룹의 이전 레스토랑과 전혀 다른 유니크한 장소로, 13구에 오픈 하게 되어서 너무 기쁘다. 고객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행복하다. 

 

La Felicità유럽에서 가장 레스토랑인데 하루 예상 고객 수는 얼마나 되나? 빅마마 그룹의 다른 레스토랑과 비교해서 차이점은 무엇인가?

- 저녁과 주말에 더 많이 붐비긴 하지만 매일 매일 고객이 늘어난다고 할 수 있다.  
어린이를 위한 액티비티가 가능한 장소가 마련되어 있고, 매주 목-일요일 저녁엔 라이브 공연이, 매 주말에는 음악 브런치와 그랑 아페리티프가 제공된다. 초대형 공간 덕분에 이 모든 게 가능한 것이다.
La Felicità에는 트라토리아(이탈리아 요리), 피쩨리아(피자), 베이커리, 그릴, 팝업 식당인 시카고 버거까지 주방만 5개가 있고, 칵테일 바 3개, 수제 맥주를 맛볼 수 있는 비어 가든도 있다. 진정한 만남의 광장이자 삶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 오픈한 레스토랑은 항상 사람들로 북적이고 핫한 장소에 위치해있다. 16구처럼 시크하지만 주택이 많은 곳에 새로운 레스토랑을 오픈한다는 상상 해봤나?

- 우리는 항상 처음 봤을 때 느낌이 오는 곳을 선택해 일을 진행했다. 운 좋게도 특별한 장소를 발견해왔고, 그 장소의 매력에 이끌려 일을 추진할 수 있었다. 어느 지역인지 보다는 장소가 가진 잠재력과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는 기회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타입이기 때문에 16구도 안 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빅마마 그룹에는 모든 레스토랑을 총괄 감독하는 « 슈퍼 셰프 »가 있나?

- 있다. 치로 크리스티아노(Ciro Cristiano)가 수석 셰프로 우리의 모든 레스토랑을 다 관리한다. 우리 주방 팀은 모두 이탈리아인 셰프다. 열정이 넘치는 셰프들은 항상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고, 그들만의 « 섹시한 터치 »를 추가해 끊임없이 메뉴를 업데이트한다. 우리 셰프들 덕분에 각 지점마다 다른 메뉴를 선보일 수 있는 것도 가능한 것이다. Mamma Primi는 생면 파스타, Pink Mamma는 신선한 고기, Biglove는 이탈리안 브런치를 전문으로 한다. 

 

처음에 선택한 이탈리아 소규모 생산자들이 여전히 충분한 물량 공급을 있는지?

- 저희가 제일 심혈을 기울이는 부분이 식자재의 신선도다. 그 부분에 관해서는 절대로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2년 전보다 훨씬 많은 고객이 우리 매장을 찾아 주신다. 그래서 예를 들면, 한 군데 모짜렐라 생산자가 아니라 세 군데에서 공급받는 식으로 소규모 생산 업체의 수를 늘렸다.

 

매장 앞에 끊임없이 이어진 줄에 대해 논쟁이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 시간 내서 저희 매장을 찾아주신 고객들을 자리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거절하는 것은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입장에서는 아주 어려운 일이다. 고객들의 실망을 100% 이해하고,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우리는 합리적인 가격에 좋은 품질의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한다. 매장 앞에 줄을 서는 시스템 덕분에 이 원칙을 지킬 수 있다. « 노쇼 »를 감당하면서 예약 시스템을 하기에는 부담이 크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더 저렴한 제품, 즉 품질이 떨어지는 제품을 사용해야 하거나 아니면 가격을 올려야 한다. 하지만 둘 다 우리가 지향하는 계획은 아니다.

줄을 서는 시스템 덕분에 우리의 방식으로 고객들에게 흠잡을 데 없는 서비스와 특별한 순간을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대신 고객들에게 조금 일찍 오라고 말씀드린다. 레스토랑 오픈 전에 미리 와서 기다리면 자리를 잡을 가능성이 더 높다. 일찍 올 수 없는 고객들은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나중에 식사를 할 수 있다. 저녁 식사 전 친구들과 같이 아페리티프를 즐길 수 있는 좋은 핑계가 되지 않겠나?

 

La Felicità

위치 : 55 boulevard Vincent Auriol, 75013 Paris 

영업시간 :  월,화 : 12시15분- 14시30분

                   수 : 12 시15분- 14시30분 / 18시-자정

                   목,금 : 12 시15분- 14시30분 / 18시-새벽 1시

                   토 : 12시-새벽 1시

                   일 : 12시-23시

www.lafelicita.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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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STIVAL야외 영화 축제

27/07/2018

매년 여름 파리지엥이 놓치지 않는 축제인, 야외 영화 축제가 7월 19일부터 8월 19일까지 라 빌레트 공원에서 열린다. 새로운 영화 혹은 다시 보고 싶은 명작 영화가 파리의 가장 큰 상영관에서 무료로 상영된다. 월평균 15만 명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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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여름 파리지엥이 놓치지 않는 축제인, 야외 영화 축제가 7월 19일부터 8월 19일까지 라 빌레트 공원에서 열린다. 새로운 영화 혹은 다시 보고 싶은 명작 영화가 파리의 가장 큰 상영관에서 무료로 상영된다.

월평균 15만 명의 관객이 찾는 야외 영화 축제는 유럽에서 가장 큰(544m2) 공기 주입식 스크린과 20 000m2의 잔디밭에서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올해의 테마는 ‘음악과 영화’로 프랑스 영화뿐 아니라 음악을 주제로 한 각국의 다양한 뮤지컬 영화, 단편 영화, 만화 영화 등이 상영될 예정이다. «라라 랜드»를 시작으로 «쉘부르의 우산»이 축제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모든 영화는 원어로 상영되며 프랑스어 자막이 제공된다. 저녁 7시 30분부터 담요나 간이 의자 대여가 가능하며 해가 지면 영화 상영이 시작된다. 특별한 주말을 보내고 싶다면 크루즈 레스토랑에서 식사한 후 영화 관람을 추천한다. 선착장이 상영 장소 가까이 있으며 크루즈 티켓에 담요와 간이 의자 대여 쿠폰이 포함되어 있다.

 

야외 영화 축제 7월 19일부터 8월 19일까지

위치 : 라빌레트 공원, Prairie du Triangle, 211 Avenue Jean Jaurès, 75019 Paris
시간 : 매주 수요일~일요일, 저녁 7시 30분부터 장소 오픈
          해 질 무렵 (22시-22시 30분경)에 영화 상영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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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STIVAL여름의 운하

16/07/2018

라 빌레트 유역에(Bassin de la Villette) 위치한 우르크 운하(Canal de l’Ourcq)에서 8월 26일까지 «운하의 여름» 축제가 열린다. 축제 동안 댄스 수업, 콘서트, 아틀리에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센 생드니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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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빌레트 유역에(Bassin de la Villette) 위치한 우르크 운하(Canal de l’Ourcq)에서 8월 26일까지 «운하의 여름» 축제가 열린다. 축제 동안 댄스 수업, 콘서트, 아틀리에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센 생드니 지역을 가로지르는 우르크 운하는 19세기에 파리 시민들에게 안전하고 깨끗한 식수를 공급하기 위해 건설되었으나 물류 수송로의 역할도 맡게 된다. 철로의 발달로 20세기 중반부터는 운하를 통한 물류 수송이 점점 줄어들게 되어 여가용으로 배를 타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옛 우편엽서에서도 우르크 운하에서 파티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듯이 휴식과 여가를 즐기는 장소로 유명하며, 지금도 매년 «운하의 여름» 축제가 열리고 있다.  축제 기간 중 매주 주말에는 평소보다 저렴하게 셔틀 보트를 이용할 수 있다. 운하를 따라 이어지는 파리 근교의 시골 풍경을 감상할 수 있고, 임시 선착장에 마련된 댄스파티, 물놀이, 공연 등을 즐긴 후 셔틀 보트를 타고 파리로 되돌아올 수 있다.   

또한, 브런치, 음악, 문화 등 다양한 테마의 크루즈도 운행한다. 올해 특별히 마련된 10km의 야외 박물관에는 12명의 스트리트 아티스트, 현대 미술 작가들이 스튜디오 아르쿠르 (Studio Harcourt)의 사진에 영감을 받아 준비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어 크루즈의 재미를 한층 높여 줄 것으로 예상한다. 스트리트 아트에 관심이 많다면 가이드의 설명을 들을 수 있는 문화 크루즈 코스를 추천한다.    

배를 끌 때 사용했던 길은 롤러스케이트나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재정비하여 도시적이면서도 자연 친화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가족들이 산책하기에도 제격이다. 카누, 페달 보트, 자전거를 대여할 수 있고, 160m 길이의 짚라인, 물놀이도 즐길 수 있다.

 

운하의 여름 (L’été du canal) 축제 2018년 8월 26일까지 


위치 : Bassin de la Villette, 6 Quai de la Seine 75019 Paris
셔틀 보트 운행 시간 
- Bassin de la Villette 출발 : 12시-19시 30분                                     
- Bobigny 출발 : 13시-20시30분
이용 가격 
- 토요일: 1€ / 일요일: 2€
- 만 10세 미만 아동 무료 (성인 1인당 어린이 2명까지만 무료 탑승 가능)
https://www.tourisme93.com/ete-du-ca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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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지엥의 숨겨진 아지트, 패션 디자인 복합관

27/06/2018

시테 드 라 모드 에 뒤 디자인 (Cité de la mode et du design)은 패션과 디자인을 위한 복합 문화 공간으로 각종 패션 행사, 전시, 문화 수업이 진행되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다. 매년 봄에는 패션 사진전, 여름에는 다양한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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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테 드 라 모드 에 뒤 디자인 (Cité de la mode et du design)은 패션과 디자인을 위한 복합 문화 공간으로 각종 패션 행사, 전시, 문화 수업이 진행되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다. 매년 봄에는 패션 사진전, 여름에는 다양한 주제의 전시, 겨울에는 국가를 하나 선정해 그 나라를 소개하는 전시가 이루어진다.

원래 이 건물은 1900년대 초 세느강 부두에서 사용하던 화물 창고였다. 콘크리트 건물의 뼈대가 보이는 독특한 건축 스타일로 당시 혁신적이라는 평가와 함께 비판을 동시에 받기도 했다. 오늘날에는 기존 건물의 틀을 유지하며 현대적인 감각을 더 하기 위해 금속과 유리를 사용한 녹색의 건축물을 완성하였다. 세느강의 물결 모양과 색에서 영감을 얻은 건물의 외관은  밤이되면 특별한 조명으로 더욱 생동감이 넘친다.

어느새 파리 시민들에게 아지트가 된 이곳 건물 내부에는 프랑스 대표 패션 교육기관인 IFM과 전시실 그리고 다양한 레스토랑과 클럽, 바 등이 있다. 50년대 스타일로 꾸며진 지하의 클럽 가라쥬(Garage)와 힙합, 그루브, 펑크, 팝 음악에 맞춰 춤을 출 수 있는 뉘 포브(Nuits Fauves)에서 요일별로 마련된 색다른 테마 파티를 즐길 수 있다.

1 600m2 의 야외 테라스를 갖춘 원더루스트(Wanderlust)에서는 휴식과 파티,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 음악과 음식, 라이프 스타일이 공존하는 이색적인 클럽 레스토랑으로 다양한 문화 예술 아뜰리에도 둘러볼 수 있다. 저녁에는 라이브 퍼포먼스와 야외 영화를 감상하거나 DJ와 함께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들으며 새벽까지 클러빙을 즐길 수도 있다.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싶다면 루프탑에 있는 코뮤니옹(Communion)과 카페 오즈(Café Oz)에 방문해보자. 루프탑에서 바라보는 야경에 ‘문루프’라는 별명이 붙은 곳이다. 센강과 파리의 야경을 감상하며 가볍게 술 한잔 하기 좋으며 파리지엥들의 퇴근 후 일상을 경험할 수 있다.

 

위치 : Cité de la mode et du design,  32-36 quai d’Austerlitz, 75013 Paris
매일 10시~자정까지 (무료입장)
www.citemodedesign.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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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RMATION몽파르나스 타워 루프탑에서 요가를

19/06/2018

파리가 훤히 내다보이는 곳에서 요가를 할 수 있다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는가? 그것도 210m 높이에서? 올여름 파리를 방문한다면 그 상상을 실현할 수 있다. 매주 월요일 1시간 동안 몽파르나스 타워 59층 야외 전망대에서 요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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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가 훤히 내다보이는 곳에서 요가를 할 수 있다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는가? 그것도 210m 높이에서?

올여름 파리를 방문한다면 그 상상을 실현할 수 있다. 매주 월요일 1시간 동안 몽파르나스 타워 59층 야외 전망대에서 요가를 통한 힐링이 가능하다. 파리의 기가 막힌 경치 감상은 덤이다.

만다나 (Mandana Mortazavi) 요가 마스터와 함께 여행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해보는 것을 어떨까? 도시의 소음에서 벗어나 하늘과 맞닿는 곳에서 색다른 경험을 원하신다면 지금 바로 예약을 서두르는 것이 좋다. 요가 매트는 지급되며, 우천 시 타워 실내 56층에서 수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장소 : 몽파르나스 타워, 33 avenue du Maine, 75015 Paris
기간 : 2018년 6월 18일- 8월 27일까지
수업 시간 : 매주 월요일 아침 8시-9시 (수업당 20€)
사전 등록 필수 (1인 2자리까지 예약 가능, 수업 인원 최대 35명)
www.tourmontparnasse56.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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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STIVAL파리 플라주

07/08/2017

파리 플라주 (Paris Plages)가 없는 파리의 여름을 상상 할 수 있을까? 미처 휴가를 떠나지 못한 파리지앵들의 마음을 달랠 뿐 만아니라 더운 여름에 관광지보랴 사진찍으랴 지친 관광객들에게는 휴식이자 마법 같은 공간을 제공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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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플라주 (Paris Plages)가 없는 파리의 여름을 상상 할 수 있을까?

미처 휴가를 떠나지 못한 파리지앵들의 마음을 달랠 뿐 만아니라 더운 여름에 관광지보랴 사진찍으랴 지친 관광객들에게는 휴식이자 마법 같은 공간을 제공하는 파리 플라주 !

2002년부터 시작해 올 해로 15년째 이어져 오는 파리를 대표하는 이색 페스티벌중에 하나이다. 센 강을 따라 구성된 이 파리 빌라쥬는 야자수 나무 아래에서 한적하게 누워 책을 보는 파리지앵들,  비키니 차림으로 얼굴에는 챙 넓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선탠하는 사람들, 비치볼 게일하는 사람들, 모래성 쌓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꼭 니스 바닷가에서 시원한 바닷바람과 파도에 발을 담그며 산책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파리지앵처럼 센 강 넘어 아름다운 파리의 건문들을 바라보며 빡빡한 파리 여행 중에 잠깐 쉬어 가는 것도 다음 여행을 위한 재충전의 시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기간: 2017년 7월 8일 부터 9월 3일까지

장소: Voie Georges Pompidou(Parc Rives de Seine rive droite) / Port de Solférino et des Invalides (Berges de Seine rive gauche)/ Parvis de l'hôtel de ville/Bassin de la villette

Pour plus d'informations consultez le site in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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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G'S LIFE STYLE힐링과 미식의 두마리 토끼를 잡는다-Caffe Soprano

03/02/2016

'힐링이 필요한 당신, 어딘가로 떠나라'라고 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면, 이 곳을 찾아볼만하다. 여름엔 우거진 나무 밑에서 시원하게 Spritz를 한잔하거나, 뒤늦게 일어난 주말 점심에 한접시 가득한 파스타나 피자가 생각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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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이 필요한 당신, 어딘가로 떠나라'라고 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면, 이 곳을 찾아볼만하다. 여름엔 우거진 나무 밑에서 시원하게 Spritz를 한잔하거나, 뒤늦게 일어난 주말 점심에 한접시 가득한 파스타나 피자가 생각나는날, 피곤한 하루를 접으며 친구와 함께 또는 동료와 함께 시원한 그 한잔을 위해, 파리지앵들이 찾는곳이 있다.
패셔니스타, 보보, 갤러리스트, 에술가들이 가득한 마레지구에 위치한 Caffe Soprano에서는 모든것이 가능하다. 그 곳이 어디든, 단골 손님이 북적이는곳, 반짝이는 눈으로 미식을 즐기는 손님들이 가득한곳, 편안하게 한가로이 그 순간을 즐기는 이들이 가득한곳이라면, 생각없이 그냥 문열고 들어가도 실패하진 않을 것이다.
Caffe Soprano가 그렇다. 진짜 이탈리안식 파스타, 퓨전 피자에 눈 튀어나오지 않게 비싸지 않은 좋은 와인까지 곁들일 수 있는 곳이다. 볕 좋은 날 넓은 테라스에 앉아 힐링과 미식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아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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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진의 여행 칼럼한편의 시를 닮은...보몽 쉬르 우아즈

19/01/2016

강   너에게 가려고  나는 강을 만들었다   강은 물소리를 들려주었고 물소리는 흰 새떼를 날려 보냈고 흰 새떼는 눈발을 몰고 왔고 눈발은 울음을 터뜨렸고   울음은 강을 만들었다 너에게 가려고   -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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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너에게 가려고 

나는 강을 만들었다

 

강은 물소리를 들려주었고

물소리는 흰 새떼를 날려 보냈고

흰 새떼는 눈발을 몰고 왔고

눈발은 울음을 터뜨렸고

 

울음은 강을 만들었다

너에게 가려고

 

-안도현-

 

보몽 쉬르 와즈는 한 편의 시를 닮은 곳으로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보몽 쉬르 와즈는 파리 북역에서 고흐를 만나기 위해 찾아가는 오베르 쉬르 와즈행 기차를 타기 위해 갈아타는 역인 페르상 보몽(Persan Beaumont)역에서 가깝다.

마을은 작고 아담하지만 오랜 역사적 가치와 건축미를 인정받은 역사 문화재가 4개나 되고, 한적한 마을의 앞으로는 와즈강이 너에게 가려는 마음에 귀기울여주고, 마을의 남쪽으로는 카르넬 숲이 넓은 자연의 품으로 지친 마음을 토닥토닥 안아준다.
보몽 쉬르 와즈는 로마 세자르 때부터 형성된 마을로 1세기경부터 중세시대까지는 파리와 보베를 잇는 교류지 역할을 하던 마을이었다. 백년전쟁 때는 군사적 요충지로 영국군과 프랑스군의 전투가 자주 있던 곳으로 피해가 컸었고, 현존하고 있는 요새 건축물에 흔적이 남아 있다.
1989-1999 사이에는 마을에서 고대 갈로 로망 시대의 2세기 유물들, 원형극장 건물 잔해와 중세시대의 수도원 흔적이 발견되었다. 


보몽 쉬르 와즈가 간직하고 있는 역사문화재
역사문화재로 지정된 생 로랑 교회(Église Saint Laurent), 보몽 쉬르 우아즈 성(Château de Beaumont sur Oise), 크루아상 저택(Hôtel du Croissant), 르 팔라스 영화관(Cinéma Le Palace) 등은 보몽 쉬르 와즈의 자랑이자 관광명소이다.
16세기에 세워진 크루와상 저택(Hôtel du Croissant)의 이름은 저택의 정면 현관 위에 있던 초승달 모양의 금속장식에서 유래되었다. 와즈강과 접해있는 시내의 북쪽 바스 드 라 발레 거리(Rue Basse-de-la-Vallée)에 있는 건물로 역참지(공공업무 수행을 위한 교통·통신기관)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보몽 쉬르 와즈는 북부의 큰 도시인 보베(Beauvais)로 가는 중간지점이여서, 여행객과 화물을 위한 역참지 건물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건물은 16세기에 짓기 시작해 17세기에 완공되었고, 1680년 7월에 루이 14세가 저택을 방문하면서 유명세를 타고 관광명소가 되었다. 저택은 그 시대에 유행하던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졌고, 흰색 벽에 직사각형의 창문들과 가파르게 경사진 갈색 지붕이 조화를 이루어 독특한 아름다움을 자아내 우아한 백작부인같은 느낌이 난다.

크루아상 저택 근처에 있는 보몽 쉬르 우아즈 성(Château de Beaumont sur Oise)은 남쪽 계곡에 세워진 요새 건축물로 10세기의 역사 문헌에도 성에 대한 흔적이 남아있을 정도로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성이다. 처음에는 목재로 지어진 성을, 12세기 초에 돌로 다시 지었고, 13세기에는 증축을 해서 지금의 성채의 모습을 갖추었다. 백년전쟁과 종교전쟁에 때 파괴와 복원이 반복되며 역사의 흔적을 간직한 성으로, 1997년에 대대적인 복원 공사로 성의 옛모습을 많이 되찾았지만 서쪽 성벽은 일부만 보수되었다. 성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위풍당당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높고 긴 성벽이다. 성벽 근처에는 1984년에 발굴 작업으로 발견한 11세기 수도원 잔재가 있다.

생 로랑 성당(Église Saint-Laurent)은 12세기부터 13세기에 세워진 성당으로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 성당은 건축기간이 긴만큼 네 번의 보수 증축을 했고, 고딕양식의 예배당은 삼각형의 지붕과 아치형의 입구에, 르네상스 양식의 거대한 사각 종탑이 있다, 우측에 있는 4층짜리 종탑은 16세기에, 작은 종탑은 12세기에, 성가대석은 12세기 중반에, 13세기에는 성당 정면의 입구가 만들어져, 고딕과 르네상스 양식의 조화로운 혼합을 통한 독특한 건축미로 시선을 끈다.

르 팔라스 영화관(Cinéma Le Palace)은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기념하여 지은 것으로 아르데코(Art Déco) 건축양식의 철골 구조물로 만든 건물이다. 건물은 1914년에 완공되었고,  정면 출입구는 유선형의 부드러운 곡선미와 흰색과 갈색의 조화가 개성적이며 전체적으로 간결한 아름다움을 이루고 있다. 1928년에 무성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으로 문을 열었던 역사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프랑스는 20세기 초의 시대를 반영한 건축미와 무성영화 상영관이었던 역사적 가치를 인정해 역사문화재로 지정했다.

마을을 돌아보고, 와즈강가를 따라 걷다보면 백조가 잔잔한 수면을 따라 노닐고, 강은 여유로운 품새로 과거를 흘려보낸 자리에 현재와 인사하며 다정한 미소 속에 네가 있어야, 내가 있다고 속삭인다.

찾아가는 방법

파리 북역(Gare du Nord)에서 기차를 타고 페르상 보몽(Persan Beaumont) 역에서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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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G'S DISCOVER오페라에 새겨진 샤갈의 흔적

13/01/2016

그 흔적이 개방된 1964년 9월23일에는 그리도 악평을 받았다. 지금은 샤갈의 흔적이 그대로 묻어있는 220 제곱미터의 작품을 극찬하며 음악과 예술을 위해 살았던 그의 향기를 느끼려 일부러라도 보러가지만, 당시에는 문화부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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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흔적이 개방된 1964년 9월23일에는 그리도 악평을 받았다. 지금은 샤갈의 흔적이 그대로 묻어있는 220 제곱미터의 작품을 극찬하며 음악과 예술을 위해 살았던 그의 향기를 느끼려 일부러라도 보러가지만, 당시에는 문화부 장관이었던 앙드레 말로(Andre Malraux)의 측근이었던 이유로 지목되어 돈을 벌기 위해 그린 작품이니, 가르니에가 15년에 걸쳐 완성한 오페라의 스타일과 전혀 맞지 않는다며 말이 많았다.

유령이 주인공이었던 꿈의 극장
오페라 가르니에는 이제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을만큼 잘 알려져 있다. 세계 5대 오페라 극장이며, 우리가 그리도 잘 아는 "오페라의 유령"의 무대기도 했으며, 전 세계 발레리나들이 꿈꾸는 그곳이다. 고전에서 바로크까지 다양한 건축이 보이는 "제 2제정시대" 절충양식의 오페라는 그의 이름을 딴 샤를 가르니에의 작품인것도 다 안다. "제 2 제정시대 양식(Second Empire Style)의 특징은 고전, 로마, 네오클레식, 르네상스등 다양한 스타일이 함께 보이는 "절충양식"이고, 치장과 문양으로 의도적으로 화려함을 이끌어냈으며, 내부에는 페인트가 아닌 벽지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처럼 나폴레옹 3세 스타일의 대표적인 작품인 오페라 가르니에는, 발레를, 예술을, 건축을 몰라도 꼭 한번은 찾아나서는 곳이다. 바로 샤갈의 흔적이 묻은 천장화 "꿈의 꽃다발"이 있기 때문이다.

샤갈이었기에 숨쉴 수 있었던 "꿈의 꽃다발"
1960년 앙드레 말로가 샤갈에게 오페라 가르니에의 새로운 천장화를 요청했을때, 단지 유명한 화가이거나 그의 측근이어서가 아니다. 파리는 그에게 절대적 인스피레이션이었고, 예술은 그의 영혼이 숨쉴 수 있는 놀이터였다. 러시아 연극 무대를 멋들어지게 만들어낸 것도 샤갈이었고, 모리스 라벨(Ravel)의 다프니스와 클로에(Daphis et Chloé) 발레 작품의 무대 의상을 장식해낸 것도 샤갈이었고, 섬세함의 극치라 경찬받는 메츠 대성당의 스테인글라스도 샤갈이 손에서 태어난 작품이었다. 음악이, 연극이, 그림이 없으면 삶이 빛나지 못했던 샤갈이란 걸 알았기에 앙드레 말로의 선택은 당연했던 것이다.

1년간의 숨막히는 시간다툼
50여장의 크로키와, 연필, 고무수채화법, 붙이기등 가능할 법 한 모든 기술을 동원했다. 77살의 적지 않은 나이에도 오직 3명의 수제자들(Roland Bierge, Jules Paschal, Paul Versteeg)와 함께 두개의 축소모형을 만들어냈다. 샤갈이지만 그의 향기보다는 오페라와 어울려야했고, 제 2 제정시대의 대표작품의 화려함에 잠기지 말아야했으며, "왜 샤갈이나"라는 비판가들의 입을 막을 수 있을 만큼 훌륭해야했다. 그 역시, 아무리 극찬받는 작품을 만들어내더라도 꼭 받아야 할 비난의 화살은 떨어질 줄 알고 있었을테다.

"꿈의 꽃다발" 속 숨박꼭질
머리를 들고 그의 작품을 찬찬히 들여다보자. 14명의 작곡가의 작품의 오마쥐가 담겨있다. 드뷔시의 "펠리아스와 멜리장드"에 카메오로 출연한 앙드레 말로도 보인다. 무소르그스키, 모차르트, 바그너, 베를리오즈, 라벨, 비제, 베토벤, 스트라빈스, 차이코프스키등 이름만 들어도 가슴 벅차는 무대가 연상되는 작곡가들에게 표하는 존경이다.

오직 예술만이 전부였던 삶을 살았다고 알려진 샤갈의 손에서 빚어진 오페라 가르니에의 천장화 아래 공연되는 무대는 얼마나 멋질지, 그 예술 콜라보를 상상하는것 만으로도 감동이 흘러나온다.

"꿈의 꽃다발"이 피기전에
샤갈의 손이 닿기 전에는 "요정들과 밤과 낮의 시간의 신들(Les Muses et les Heures du jour et de la nuit)"이 자리하고 있었다. 파리 팡테옹 프레스코 벽화, Joan of Arc at the stake in Rouen로 유명한 프랑스 출신 신고전주의(Neoclassical) 화가 쥴-으젠 르넵뵈(Jules-Eugene LENEPVEU)의 1872년 완성 작품이다. 샤갈은 르넵뵈의 작품이 손상되거나 없어지지 않도록, 조립식 폴리에스테르 수리를 사용해 본인의 작품을 그 위에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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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G'S DISCOVER그 아름다움이 그 흠결을 메우고도 남는-거울의 방

07/01/2016

굳이 그 이름을 대지 않더라도, 루이 14세,  루이 16세, 건축가 망사르, 트리아농이라 키워드만 들어도 웅장함과 아름다운 향취가 느껴진다. 볼테르는 "그 아름다움이 그 흠결을 메우고도 남는 거대한 궁전"이라 칭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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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그 이름을 대지 않더라도, 루이 14세,  루이 16세, 건축가 망사르, 트리아농이라 키워드만 들어도 웅장함과 아름다운 향취가 느껴진다. 볼테르는 "그 아름다움이 그 흠결을 메우고도 남는 거대한 궁전"이라 칭하기도 했다. 어딘지 짐작이 가는가. 바로 베르사이유 궁전이다. 이제 더 이상 베르사이유 궁전에 대한 설명은 필요도 없다. 죽기전에 꼭 봐야할 건축물 1001로 선정되기도한 이 곳의 정점은 단연 "거울의 방"이다.

왕족들의 숙소와, 루이 13세의 사냥놀이가 있을시 머물렀던 궁전, 베르사이유는 1661년 루이 14세의 등극으로 "제일 화려하고 장대한 모습"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권력을 나타내고 싶었던것이다. 15개방 중 그 빛이 가장 아름답고, 참 비밀도 많은 곳이지만, 그 아름다움에 매료될 수 밖에 없는 곳이 바로 "거울의 방"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들이 발걸음하고, 73미터에 이르는 그 발걸음 한번에 황홀해하고, 눈부셔한다. 3세기가 넘도록 그 빛깔이 흐려지지 않는, 불변의 미를 간직한 그런 곳이다. 357개의 거울에 담긴 모습을 보면서 마치 무도회장에서 음악에 몸을 맡긴듯한 상상을 한두번 해봤으랴.

권력의 상징이었던 베르사이유 궁전, 가장 정중앙에 위치해 있는 거울의 방에서는 정원이 한눈에 보인다. 천4백여개의 분수가 춤추고, 볕이 가장 잘 들어오는 곳이다. 이탈리아식 팔라스처럼, 처음에는 지붕이 없는 테라스로 완공되었었다. 허허벌판이었고, 지대가 다른 곳보다 높은탓에 지중해식 기후가 아닌탓에 1679년 지붕이 올려졌다.

정원이 내다보이고, 채광이 좋지만, 여전히 재미도 없고, 건조할 수 밖에 없는 이 곳을 다르게 변화하고자 한 인물은 쥘 망사르(Jules Mansart) 건축가이다. 여전히 그 곳에 자리하면 우리의 마음이 설레고, 요정의 나라인듯 상상하게 하는데, 당시에는 대단히 기아한 발생이었지만, 이제껏 한번도 못지 못했던 인테리어로 이 곳을 찾는 모든 귀족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감히 빛이 들어오는 창앞에 거울을 장식하고, 모든 거울의 크기를 동일화하고, 거울하나만으로 화려함을 표현할 수 있었던 그의 창의는 진정한 모험이었지만, 루이 14세의 권력을 한층 높일 수 있었던 쾌거를 만들어냈다.

6년이라는 긴 시간을 들여 완공된 1684년부터 "거울의 방"은 불멸의 미를 상징하는 이 곳은 그저 "이뤄지지 못할 꿈"만 꾸고 가는 곳이 아니다. 1919년 6월 28일 1차 세계 대전 종식을 알리는 "베르사이유 조약"이 체결된 역사가 담긴 공간이고, 르브랑(Charles Le Brun)의 손길이 담긴 작품이 천장에 남아있는 예술의 공간이다.

이쯤이면, 죽기전에 꼭 봐야할, 걸어봐야 할, 느껴봐야 할 공간이 충분히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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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COVER작은 참새 에디트 피아프

22/12/2015

파리를 사랑하는 그대다. 그런데 당신이 한발 늦었다. 이미 파리는 에디트 피아프와 먼저 사랑에 빠졌다. 1915년 12월19일에 태어난 그녀는 올해로 100세를 맞았다. 파리가 잊지 못하는 에디트 피아프이기에, 우리 모두 그녀가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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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를 사랑하는 그대다. 그런데 당신이 한발 늦었다. 이미 파리는 에디트 피아프와 먼저 사랑에 빠졌다. 1915년 12월19일에 태어난 그녀는 올해로 100세를 맞았다. 파리가 잊지 못하는 에디트 피아프이기에, 우리 모두 그녀가 세상을 떠난 날이 아닌, 그녀가 이 세상에 발을 딛은 그 날만을 기억한다. 흑백으로 남겨진 그녀의 모습만을 기억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그녀의 음악은 여전히 우리 모두에게 현재로 기억되고 있다.
우리는 그녀를 La Môme이라고 부른다. 사전을 찾아보면 "어린 아이", "길에서 사는 젊은 여인", 또는 "애인 혹은 연인"이라는 뜻이 보인다. 모두 그녀와 똑 닮았다.

그녀를 말하다.
BNF(프랑스 미테랑 도서관)에서는 2015년 4월부터 8월까지 Edith Piaf 전시회를 열었다. Theatre du Marais에서는 피아프, 장미빛과 흑백의 인생(Piaf, une vie en rose et noir)으로 그녀의 노래를 각색하여 그녀의 일대기를 말한 연극이 있었다. 파리 필하모니에서는 그녀의 생일을 기점으로 Edith Piaf special 공연 및 이벤트를 보였다. 그녀의 거리였던 벨빌에서는 그녀의 노래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그녀가 그리도 사랑했던 파리가, 그녀의 멜로디가 머물었던 파리의 길들이, 그녀에게 사랑을 되돌려주었다.

굴곡이 많던 인생, 사랑이 뭔지 모르던 그녀
Édith Giovanna Gassion가 본명인 그 녀는 만삭의 어머니가 병원에 미쳐 도착하기도 전에, 파리 빈민가 거리를 지나던 모든 이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그녀의 인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곡예사 아버지 루이스는 제 1차 세계대전으로 징집당했고, 삼류 가수 어머니 아네트는 곳곳을 전전하며 다녔기에 딸을 부양할 수 없었다. 우리는 흔히 142cm의 작은 몸에서 나오는 폭발적인 가창력이 그녀를 불멸의 가수로 기억되게 한다고 말하지만, 그녀의 작은키의 뒷 내막은 그리 밝지만은 않다. 친할머니에게 맡겨지면서 창녀촌에서 각막염, 영양실조등 이겨내기 힘든 유아기를 보내야했다. 곡예사 아버지와 재회한 후 함께 파리의 길거리를 떠돌아다니고, 남자친구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은 두살때 수막염으로 사망했다. 애절할 수 밖에 없다. 절규할 수 밖에 없고, 감정이 풍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미래가 있고 낭만이 있었을 것이다. 물도 나오지 않는 여인숙 3층에 살았지만, 매일 노래를 할 수 있었고, 그녀가 선 그 길거리의 무대에선 그녀가 주인공이었다.

 

참새가 날다
그녀는 "내가 원하지 않으면 아무리 노래를 하고 싶어도 그 길에 서지 않는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그럴 수 밖에 없어서의 인생이 아니라, 그녀가 원하는 인생을 살겠다는 의지가 아닐까. 어느때처럼 한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던 그녀에게 카바레 제니스의 지배인 루이 르프레가 나가왔다. 그녀의 목소리에 매료된 것이다. 참새라는 뜻의 피아프라는 예명도 만들어줬다. 상처투성이었던 작은 참새가 날기 시작했다.  작곡가이자 가수였던 레이몽 아소를 만나, 작곡 및 작사의 능력도 갖추면서 그녀는 완벽에 가까운 실력을 갖게 되었다.

남자와 노래
그녀의 인생에는 남자가 많다. 그 모든이들에게 그녀는 매번 첫사랑의 순수함과 열정을 선사했다. 그녀의 명곡들은 그 남자들과의 관계가 깊다. 장미빛 인생은 물랭루즈에서 만난 이브 몽탕과의 사랑의 열매다. 진실됐지만 짧은 사랑만이 연속되었다. 그러다 미국에서 프랑스의 복싱 영웅 마르셀 세르당과의 우연적인 몇 차례의 만남으로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다. 짧았지만, 그녀가 손꼽을 수 있는 몇 안되는 진짜 사랑이었다. 그가 비행기 사고로 목숨을 잃고 고통과 절망속에서 만들어진 노래가 '사랑의 찬가'이다. 구슬프게 부르짖는 그녀의 음색때문일까, 노래를 들으면 가슴이 미어진다.
프랑스 샹송가수 자크 필스와의 첫번째 결혼도 4년만에 끝을 찍고, 그녀에겐 마지막 사랑인 테오 사라포를 만나 결혼했다. 그녀가 48년의 파란만장한 생을 마치는 날 함께 있는 남자가 된 것이다.

커튼이 닫히고
노래를 못하면 살 수 없고, 죽음보다 외로움이 더 무섭다던 그녀는, 무대 위에서 노래를 벗삼아, 부모삼아, 친구삼아 평생 살아왔다.

그녀는 떠났지만, 여전히 살아있다. 여전히 그녀가 태어난날엔 생일을 축하하고, 여전히 그녀의 노래를 들으며 함께 아파하고 눈물흘리고 기뻐한다. 연극, 뮤지컬, 영화까지 그녀의 이야기를 놓지 않고 있다. 그녀가 남자들과 나눴던 사랑은 짧았지만, 그녀가 말하고자 했던 사랑은 이렇게 길다.

위고 바살의 그녀
위고 바살은 7년간 그녀의 사진작가였다. 사진 작가를 꿈꾸던 그는 1963년 그녀가 인생을 마감하는 그날까지 7년간 그녀를 가까이했다. 신문사의 사진 인턴이었던 그는 1957년 디종에서 있었던 에디트 피아프의 공연을 찍으며 그녀와의 첫 만남을 가졌다. 그녀가 위고 바살을 향해 던진 사랑은 변치 않고 바래지 않는 우정이었다.  그는 그녀의 절친한 친구가 되었고, 따뜻한 남동생이 되어주었으며, 그녀가 마지막으로 웃으며 손잡아 준 위대한 사진작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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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진의 여행 칼럼샤를 8세의 결혼식이 열렸던 랑제 성

16/12/2015

랑제 성(Château de Langeais)은 위세 성과 이웃하고 있는 성으로 샤를 8세와 브레타뉴 여공작 안 드 브레타뉴의 결혼식이 열렸던 곳으로 웅장하며 기품이 서려있는 성이다.랑제 성의 역사랑제 성은 10세기 말에 앙주 백작 풀크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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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제 성(Château de Langeais)은 위세 성과 이웃하고 있는 성으로 샤를 8세와 브레타뉴 여공작 안 드 브레타뉴의 결혼식이 열렸던 곳으로 웅장하며 기품이 서려있는 성이다.

랑제 성의 역사
랑제 성은 10세기 말에 앙주 백작 풀크 네라(Foulques Nerra)에 의해 요새로써 처음 세워졌다. 랑제 성도 로슈 성과 마찬가지로 투렌의 일대를 지켜낼 수 있는 주요 요새로 앙주 백작가문과 블루아 백작가문사이의 전세에 따라 성주가 달라지다 13세기, 프랑스 왕 필리프 2세 때부터 프랑스 왕실 소유가 되었다.
백년 전쟁 때 랑세 성은 샤를 7세가 성의 해체를 지시할 정도로 황량하니 전쟁의 바람에 시달려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이 때 아성은 남겨져 ‘풀크 네라의 탑’이라 불리고 있다.

이후 샤를 7세의 아들 루이 11세가 방치되었던 성을 새로 건립하였다. 루이 11세는 1465년경에 측근인 고문관장 브레에게 명령하여 성을 건축하게 하였고, 화약을 사용한 대포를 방어하기 위해 성 밖에는 연못을 파고 높은 성벽을 세워 방어책을 세우게 했다. 성은 왕의 위엄을 과시할 만큼 큰 규모의 웅장함과 화려함을 갖춘 성으로 태어났고, 이에 만족한 왕은 자신의 위엄을 알리기 위해 안 드 브르타뉴와 이 성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둘의 결혼은 정략결혼으로 브르타뉴 공국의 안 드 브르타뉴와 결혼함으로써 프랑스 왕국 편입을 위한 것이었다. 혼인 계약서에는 샤를 8세가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을 경우 그의 뒤를 이어 프랑스 왕이 된 자와 결혼 할 것을 안은 남겼고, 말이 씨가 된 것처럼 샤를 8세는 후사 없이 1498년 세상을 떠났다. 안은 샤를 8세의 친척으로 왕위에 오른 루이 12세와 재혼했다.
성은 15세기 이후 자주 성주가 바뀌다 문화애호가였던 자크 지크프리트(Jacques Siegfried)가 1866년에 랑제 성을 구입하여 보수했다. 성의 내부도 태피스트리, 가구 등을 모아 장식하고 관리하다 1904년 국가에 기증했다.

브레타뉴의 생애
안 드 브레타뉴는 브레타뉴공 프랑수아 2세의 딸로, 프랑수아 2세는 1488년에 프랑스 국왕의 허락 없이는 딸을 혼인시키지 않겠다는 샤블레 조약을 맺었다. 안이 11세 때 아버지가 사망을 해 그녀가 브레타뉴 공령의 주인이 되었다. 안 느 브레타뉴는 아름다운 미모에 어린 나이지만 총명해 군력을 장악했고, 13세 때는 부친이 서약한 샤블레 조약을 어기고, 오스트리아의 맥시밀리언 황제와 상징적인 대리결혼을 했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샤를 8세는 브레타뉴를 공격했다. 샤를 8세는 맥시밀리언 1세의 딸인 마그리트와 ‘성관계 없는 결혼(mariage blanc)’을 한 상태였다. 
그는 군대를 보내 브레타뉴 지방의 도시를 거의 점령해 버렸고, 브레타뉴 사람들은 샤를 8세와 결혼해달라고 했다. 안은 어쩔 수 없이 맥시밀리언 황제와의 혼인서약을 파기하고 샤를 8세와 결혼하게 된다. 로마 교황청은 두 사람의 이전 혼인을 무효화시키고 인정해주었다. 정략결혼에는 계약이 있었는데, 계약 내용은 두 사람 사이에 자녀가 하나도 없는 경우, 국왕이 먼저 죽으면, 왕비는 자동적으로 브레타뉴 공령의 여주인으로 원상 복귀하게 된다. 이런 경우 재혼을 해서는 안 되고 만약 재혼을 하게 된다면 미래의 프랑스 국왕과 혼인을 해야 한다는 요지였다.  이 조약은 브레타뉴의 프랑스 왕국에 완전 귀속을 위한 것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네 명의 아이가 태어났지만 유아기에 모두 사망했다. 1498년에는 샤를 8세가 문의 중방에 머리를 세계 부딪쳐 어이없이 사망했고, 안은 브레타뉴 공국의 권리를 되찾게 된다. 
샤를 8세가 세상을 떠나자 루이 오를레앙공이 루이 12세로 프랑스 왕위에 즉위했고, 루이 12세는 브레타뉴 지방을 지켜내기 위해 아내인 잔 드 발루아와의 혼인을 파기하고, 안 드 브레타뉴에게 구혼했다. 안 드 브레타뉴는 계약에 따른 것보다 독립적인 여주인으로, 성인으로 당당하게 결혼을 선택하고는 루이 12세 사이에 8명의 자녀를 낳았다.

랑제 성의 아름다운 건축미
랑제 성은 남색 지붕과 회색 벽으로 이루어져 모노톤의 어두운 느낌 속에서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왕처럼 위풍당당하니 웅장하고, 내부는 외부의 어두운 느낌과는 달리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한 성으로 루아르 강을 굽어보고 있다.
후기 중세 건축물을 대표하는 표본으로 꼽힐 만큼 아름다운 건물은 위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주 건물은 ‘ㄴ’자 모양으로 배열되어 있고, 세 개의 거대한 원형 탑이 있다.
성의 내부는 15-16세기의 화려한 태피스트리, 고풍스러운 가구와 19세기 예술품들로 장식되어 있다. 방에는 ‘불명예보다는 죽음을’이란 안 드 브르타뉴 가문을 상징하는 글과 흰담비 장식, 프랑스 왕가의 백합 문장이 벽에 걸려있다.
홀은 샤를 8세와 안 드 브르타뉴의 결혼식 장면이 재현되어 옛 왕실의 혼례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준다. 성의 안마당은 작은 정원과 이어져 있고,  작은 정원을 지나며 공원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풀크 네라의 탑 하단이 있다. 탑의 일부로 남아있는 탑 하단은 성에서 가장 오래된 부분이다.  굴뚝은 다른 성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섬세한 장식으로 되어 유명하며 그만큼 시선을 잡아끈다. 성은 1922년에 역사적 가치와 건축미를 인정받아 프랑스 역사문화재로 등재되어 보존 중이다.

Le château de Langeais
주소: Place Pierre de Brosse, 37130 Langeais
개관시간:2월-3월 (9h30–17h30), 4월-6월.9월-11월 11일까지 (9h30–18h30), 7월-8월 (9 h–19 h),11월 12일부터1월 31일까지(10h–17h, 12월 25일 크리스마스 14h– 17h). 휴관없음.
전화번호 : 02 47 96 72 60
http://chateau-de-langea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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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G'S LIFE STYLE수많은 얼굴의 비밀을 파헤칠 그곳 - 메츠

15/12/2015

메츠는 비밀이 많은 도시다.  3천여년의 역사를 기록했기에 그럴만도 하다.  켈트족의 요새도시였다가, 메티스(Mettis)라 불리는 고대 로마 도시기도 했다. 아우스트라시아의 수도이기도 했고 카롤링거 왕조의 주요 도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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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츠는 비밀이 많은 도시다.  3천여년의 역사를 기록했기에 그럴만도 하다.  켈트족의 요새도시였다가, 메티스(Mettis)라 불리는 고대 로마 도시기도 했다. 아우스트라시아의 수도이기도 했고 카롤링거 왕조의 주요 도시기도 했다. 온 유럽이 전쟁으로 들끓었던 오랜 세월동안 프랑스와 독일을 넘나들며 주요 군사 요충지로 손꼽히는 도시였다.  기나긴 시간을 지나오면서 고대 로마시대부터 중세 및 고딕 양식까지,  다양한 양식의 건축물들과 프랑스와 독일이 절묘하게 공존하는 분위기로 "수많은 얼굴을 가진 메츠"임을 인정케한다.

12월초의 겨울임에도 나름 훈훈했던 날씨와 유럽에서 알아주는 노엘 시장이 있어서 그런지 유럽 곳곳에서 관광객들이 몰려들었다. 붐비지 않는 여행을 즐길 수 있으리라 부풀었던 기대가 무너졌다. 유럽  각지를 대표했던 건축 양식들이 있어서일까, 프랑스 땅에 있지만, 마치 유럽 어디선가 한번쯤은 본 듯한 건물들이 가득한 올드타운과 마차를 끄는 말굽 소리가 들릴듯한 돌바닥, 곳곳의 광장으로 연결되는 길쭉 길쭉한 골목길들까지, 투박스럽지만 낭만이 가득한 메츠의 짧은 이틀 여행을 시작해보자.

그 첫날 16시
퐁피두 센터를 먼저 갈까 고민을 했지만, 겨울엔 밤이 일찍 다가오는 관계로 노엘 시장만을 섭렵하기로 했다. 8개의 광장에서 각각의 테마에 맞게 8개의 노엘 장이 선다. 디즈니의 모든 캐릭터들을 얼음으로 조각한 "얼음의 요정 나라(Féérie de Glace)"를 보기로 했다.우리의 심금을 울리고, 웃음을 주고, 주인공들의 아름다움에 질투를 유발했던 모든 캐릭터들이 한 곳에 모였다. 한시간에 달하는 기나긴 줄도 마다하지 않고 꿋꿋히 기다려 드뎌 입성! 영하 6도에 달하는 추위에 덜덜 떨면서도, 라이언킹, 라푼젤, 신데렐라,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 Cars까지, 굴하지 않고 모두와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그 첫날 18시30분
날씨도 어둑어둑해지고, 추위에 덜덜 떨었던 탓일까, 따뜻한 뱅쇼(Vin chaud)와 함께 스트릿 푸드를 체험하고 싶었다. 먹거리 시장으로 가득했던 Place de Chambre로 향하는 길에는 곳곳에 크리스마스 데코가 아름답게 되어 있어서 사람들에게 치이면서도 짜증한번 나지 않는 즐거운 발걸음이었다. 고딕 양식의 대표주자라 불리는 생 테티엔 성당 옆에 위치한 "먹거리 노엘 시장"에서 메츠의 자랑거리 브레젤(Bretzel)과 소세지, 오븐 감자 요리등 배를 두둑히 채웠다. 저녁의 매서워지는 바람에 서서먹는 시장 음식이었지만, 그 분위기에 취해서일까, 모든것이 완벽했다. 등에 붙은 배에 바람을 불어넣고는 Grand Roue(대관람차)를 타고 메츠를 위에서 내려다봤다. 조명속에 자리한 생 테티엔 대 성당과 낭만이 녹아나는 메츠의 아름다움은 눈으로만 담아두었다.

그 둘째날 11시30분
여행을 즐겁게 시작하는 그 첫번째는 바로 미식. 얼마전부터 일요일의 브런치를 즐기기 시작했기에 메츠에서도 당연히 브런치의 전통을 이어나가기로 했다. 나의 발걸음이 멈춘곳은 Au Marche. 메츠에서 집밥을 먹고 싶다면 꼭 찾아야 할 곳이다. 너무 옛스럽지 않지만 오랜 풋풋함이 느껴지는 데코레이션에 손님을 맞는 주인의 웃음과 친절함, 뷔페식으로 놓여진 맛들어진 음식들까지, 이 곳을 정말 잘 찾았음을 나 스스로 자랑스러워 했다.

그 둘째날 14시 30분
"보따리 작가"로 유명한 김수자 작가의 투 브리드(To Breathe)가 열리는 메츠 퐁피두 센터를 찾았다. "2015-16 한불상호교류의 해" 행사의 일관으로 기획된 전시는 공간을 탐구한 김수자 작가의 작품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다. 빛과 공간, 영상과 소리의 조화를 보여준다. 2010년 5월 12일 개관한 메츠 퐁피두는 종이 건축으로 유명한 일본 건축가 시게루 반의 작품이다. 자연과 도시의 융합을 끌어내려 한 그의 컨셉에 맞춰 모자의 형태가 보여지는 지붕은 직사광선을 차단하는 폴리테트라플루오르에틸렌(polytétrafluoroéthylène )이 재질이다. 현대 미술의 향연이 펼쳐지는 박물관인만큼 모던함으로 꾸며진 최첨한 친환경의 정수를 보여주는 메츠 퐁피두다. 시게루 반이 항상 추구하는 "미학적이고 기능적인 방식"이 뚜렷이 나타난다.

그 둘째날 17시 40분
이틀간의 짧은 메츠 여행을 마치고 파리로 향했다. 어제의 기차안에서는 모르는 곳을 찾아 떠나는 모험에 대한 설렘과 약간의 두려움이 있었다면, 오늘의 이 곳에서는 즐거운 기억들로 가득담은 만족함이 두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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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NT겨울의 왕국, 파리의 스케이트장

10/12/2015

겨울엔 역시 달리는게 최고다. 다음날 온 몸이 뻐근하게 아파올걸 알면서도, 너무나 많이 넘어져서 온 몸에 멍이 들걸 알면서도, 입술이 파래질만큼 추울걸 알면서도 그렇게 달리는게 좋을수가 없다. 역시 겨울엔 스케이트장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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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엔 역시 달리는게 최고다. 다음날 온 몸이 뻐근하게 아파올걸 알면서도, 너무나 많이 넘어져서 온 몸에 멍이 들걸 알면서도, 입술이 파래질만큼 추울걸 알면서도 그렇게 달리는게 좋을수가 없다. 역시 겨울엔 스케이트장이 최고다.
12월이되면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온 파리가 들뜬다. 그 중 가장 최고의 히트는 파리 곳곳에 만들어지는 "크리스마스 스케이트장"이다. 파리 시청광장, 트로카데로 광장, 에펠탑, 만인이 꿈꾸는 샹제리제까지, 자리만 좀 된다하면 스케이트장이 만들어진다.

1. 에펠타워를 지붕삼아
고소 공포증이 있는 이들이 그렇게 불쌍할 수가 없다. 57미터의 높이에 만들어진 에펠탑 스케이트장은 파리의 겨울 명소로 유명하다. 파리의 아름다운 뷰를 보며 달리는 기분은 직접 해보지 않으면 절대 표현이 불가능하다. 2015년도에는 COP21을 맞아 재활용 자재들과 나무로 꾸며졌다.
*2015년 12월1일부터 2016년 1월31일까지
*주소 : Tour Eiffel
*시간 : 매일 10시30분부터 22시30분까지
*가격 : 스케이트장은 무료
*계단 입장(4-11세) 3.5유로 / 12세18세는 4유로 / 성인 5유로

2.  트로카데로 On Ice
트로카데로는 또 하나의 winter village가 된다. 100여개의 겨울 오두막집과 먹거리 볼거리가 넘쳐난다. 오스트리아, 스페인, 그리스, 이탈리아등 전 유럽의 음식도 맛볼 수 있는 공간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가장 많이 넘쳐나는 곳은 단연 트로카데로 스케이트장이다. 2015년에는 Trocadero On Ice로 불리며 가족들이 함께하는 공간임을 강조했다. 무려 그 넓이는 300제곱미터가 되는데 때때로 스케이트의 묘미를 볼 수 있는 공연도 이뤄진다. 이 곳에 발을 들이면 마치 흰눈으로 덮힌 겨울의 어느 스키장에 온 듯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2015년 12월18일부터 2016년 1월3일까지
*Trocadero 광장
*시간 : 매일 11시부터 20시가지
*12월24일 18시까지, 25일과 31일 폐장

3. 오 샹제리제! 스케이트장
전통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샹제리제 스케이트장은 명물을 넘어 크리스마스에 꼭 있어야 하는 전통이 되었다. 2015-16년 에디션은 더 거대해졌다. 만인이 꿈꾸는 샹제리제를 스케이트를 타고 달려보는 짜릿함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무려 4천 제곱미터의 넓이로 파리에서 가장 큰 스케이트장이 되었다. 볼거리로는 봅슬레이 챔피온, 스키, 스케이트의 유명인사들이 공연도 펼친다.
*2015년 11월13일부터 2016년 1월3일까지
*샹제리제 거리 남쪽
* 11시부터 밤 12시까지, 금요일과 토요일은 새벽 1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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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COVER또 다른 파리

07/12/2015

또다른 모습의 파리를 보자. 하루가 멀다하고 똑같은 시간이 지나가는 그 곳이지만 어느순간 다르게 보일때가 있다. 특히 Black&White로 보는 그 곳은 또 다른 느낌일 것이다. 어느순간 벽에 그려진 그래피티가, 장난스럽지만 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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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모습의 파리를 보자. 하루가 멀다하고 똑같은 시간이 지나가는 그 곳이지만 어느순간 다르게 보일때가 있다. 특히 Black&White로 보는 그 곳은 또 다른 느낌일 것이다. 어느순간 벽에 그려진 그래피티가, 장난스럽지만 낭만의 파리와 어울리는 포스터들이, 촘촘히 붙어있는 파리의 멋들어진 지붕들이, 그의 사진속에 담기면 어느새 예술이 된다.
어번 포토그래피(Urban Photography)의 떠오르는 별이라 불리는 Yann Cielat를 살펴보자. 
그의 영원한 테마는 "또다른 파리의 모습"이다. 유명 건축물부터, 버려지고 방치된 많은 장소들까지, 그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2011년 시작된 Abstract Chaos전시에서는 우리의 눈으로는 잡아낼 수 없는 혼돈속에서의 단정함과 무채색에서 뿜어나오는 멋스러움이 느껴지는 작품들이 눈에 띈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이런 기발한 모습들에 중독이라도 되는걸까, Yann Cielat의 전시가 열리면 항상 사람들로 북적인다.
루앙(Rouen)태생인 그는 비디오 아티스트로 시작해 단편 영화 및 뮤직 비디오를 제작하며 파리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파리의 주름"까지 남겨두고 싶다는 그다. 그의 사진은 공간의 기억으로 남겨지기 보다는 또 다른 파리의 모습으로 영원한 현재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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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G'S LIFE STYLE세르누키 박물관 - 숨어있는 보석을 찾아

25/11/2015

유럽의 5대 아시아 예술 박물관으로 꼽히지만, 많은 이들에게 낯설기만 한 박물관이 있다. 세르누키 박물관(Musee Cernuschi)은 밀라노 출신 은행가 헨리 체르누키(Henri Cernuschi)의 개인 소장품을 전시한 미술관으로 시작해 현재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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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5대 아시아 예술 박물관으로 꼽히지만, 많은 이들에게 낯설기만 한 박물관이 있다. 세르누키 박물관(Musee Cernuschi)은 밀라노 출신 은행가 헨리 체르누키(Henri Cernuschi)의 개인 소장품을 전시한 미술관으로 시작해 현재는 중국, 일본, 한국등 아시아 예술 작품과 고고학 유물 약 1만 2400여점을 소장한 파리 시 박물관이다.  그가 사망한 후 2년후인 1898년 10월26일에 처음으로 개방되었다.
세르누키는 다른 박물관보다 더 많고 다양한 아틀리에를 선보이고 있어, 남녀 노소 모두가 각각의 구미에 딱 맞는 활동을 찾을 수 있다. 세르누키 박물관에는 전통적인 상설 진열외에도 특별전도 자주 개최되는데, 올해는 한불수교 130주년을 맞아 SEOUL-PARIS-SEOUL이라는 테마로 프랑스에서 활동을 했거나 여전히 활동중인 작가들을 중심으로 특별전을 열어 프랑스인들에게 현대 한국 작가들을 선보이고 있다.

---세르누키 이야기
오스트리아에서 밀라노를 해방시킨 영웅이었던 세르누키는 의원으로 몸담았던 (1848-49) 로마 공화정이 붕괴되자 1852년 Credit Mobilier의 이사회에서 활동한다. 경제학자로의 이름을 널리 알리기 시작했으나 1852년 나폴레옹 3세 정권 국민투표(Plebiscite 1869)에 반대하면서 추방되었다가 1870년 9월에 다시 프랑스로 돌아온다. 현재 BNP PARIS BAS은행의 시초였던 BANQUE DE CREDIT ET DE DEPOT DES PAYS-BAS 의 초기 창설 멤버였던 그는 1874년에 완공된 그의 빌라에 아시아 에술품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음산함을 추구했던 그의 빌라에서는 사시사철 파티가 열리곤 했다. 1871년 9월부터 1873년 1월까지, 예술 평론가 테오도르 뒤레(Theodore Duret)와 세계 여행을 하면서 중국과 일본 등지에서 4천여점의 예술품을 사들였다. 본인의 전 컬렉션과 빌라를 파리 시청에 유증한 후 1896년 망통(Menton)에서 사망했다.

-----세르누키 박물관
몽소 공원의 연장선인 Velasquez거리에 위치한 세르누키 박물관은 그의 이름을 딴 헨리 세르누키가 사망한 후(1896년) 2년만인 1898년 10월26일날 처음 문을 열었다. 중국, 한국, 일본등 극동 아시아 지역의 예술품만 1만 2400여점을 소장하고 있는데, 주로 신석기시대부터 13세기까지의 중국 예술품들이 대부분이다. 18세기 후반의 메구로 불상을 비롯해 세르누키가 2년간의 세계 여행을 하며 일본에서 직접 수집한 청동 작품과 도자기등 일본 예술품도 3500여점에 이른다.
세르누키 박물관은 기메 박물관(Guimet) 뒤를 잇는 프랑스의 두번째 아시아 예술 박물관이자, 유럽에서는 5대 아시아 예술 박물관으로 꼽힌다.  네델란드 건축가William Bouwens van der Boijen의 작품으로 북이탈리아식 네오클래식 스타일을 자랑한다.
건물의 벽면에는 세르누키가 그리도 존경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습이 모자이크 형상으로 표현되어 있고, 문짝에는 Fevrier(2월)와 Septembre(9월)이 새겨져 있는데, 1848년과 1870년에 있었던 두 번의 혁명이 일어난 달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 SEOUL-PARIS-SEOUL

한불 수교 130주년을 기념하는 한국 특별전은 1950년부터 프랑스에서 공부 및 활동을 시작한 재불 한국 예술인들을 기념하고 있다.  이 중 일부는 한국으로 돌아가 활동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프랑스 및 유럽에서 유명 예술가로 존경받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프랑스 예술 활동의 선구자들로서의 접근으로 한국의 역사를 가미한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인만이 표현할 수 있는 특별함을 선보이기 위해 한국어 서법과 한지의 사용등, 현재와 과거를 함께 접목시킨 예술 작품들이 많다.  세르누키 박물관의 소장품을 비롯해, 한국 현대 미술관, 대전 이응로 박물관 소장품등, 총 60여개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작가 : Pai Unsung, Rhee Seund Ja, Kim Whanki, Lee Ungno,  Bang Hai Ja, Han Mook, Moon Shin, Nam Kwan, Park Seo- Bo, Kim Tschang-Yeul, Yun Hyong-Keun, Shim Kyung Ja, Lee Bae, Chung Sang-Hwa, Paek Youngsu, Kim Guiline, Park In-Kyung, Hong Insook, Lee Jinwoo, Chae Sung-Pil, Won Sou-Yeol, Yoon-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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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진의 여행 칼럼프랑스 최고의 정원-빌랑드리 성

15/10/2015

투르에서 15㎞ 떨어진 곳에 자리한 빌랑드리 성(Château de Villandry)은 루아르 계곡의 고성 중의 하나로 이들 성 중 가장 마지막에 지어져 가장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빌랑드리 성은 다른 루아르 계곡의 고성에 비해 이름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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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에서 15㎞ 떨어진 곳에 자리한 빌랑드리 성(Château de Villandry)은 루아르 계곡의 고성 중의 하나로 이들 성 중 가장 마지막에 지어져 가장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빌랑드리 성은 다른 루아르 계곡의 고성에 비해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꾸준히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다. 그 이유는 베르사이유 정원과 더불어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 중으로 하나로 꼽히는 르네상스 양식의 아름다운 정원 때문이다.

빌랑드리 성의 역사
셰르(Cher) 강의 둑 위에 세워진 빌랑드리 성은 11세기부터 봉건 영주의 요새였던 성으로, 1189년 7월 4일 프랑스의 필리프 2세와 영국 왕 앙리 2세가 평화협정을 맺기 위해 만난 장소로 역사에 기록되기 시작했다. 당시 빌랑드리의 명칭은 콜롱비에(Colombiers)였기 때문에 그 협정은 ‘콜롱비에 평화조약’이라고 불린다.
앙리는 1154년 앙리 2세로 왕위에 올라 잉글랜드를 비롯하여 노르망디, 프랑스 서부 등을 통치하다 엘레노아가 시집오면서 아키텐을 지참금으로 가져오자 엄청난 영토를 소유하게 되며 더 큰 권력을 행사하게 된다. 이런 앙리 2세에게 비극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셋째아들 존을 편애하게 되면서이다. 아버지의 편애를 못마땅하게 여긴 둘째아들 리차드가 어머니, 형제, 프랑스 왕 필리프 2세와 짜고 반란을 일으켰고 이 때 사랑하는 존마저 아버지를 배신하고 리차드편을 들게 되고, 앙리 2세는 프랑스 영토를 내주게 되는 굴욕적인 조약인 콜롱비에 조약을 맺은 뒤 이틀 뒤인 7월 6일에 시농성에서 열병으로 쓸쓸하게 세상을 떠난다.
이 평화조약으로 프랑스의 카페왕조는 노르망디, 브르타뉴, 투렌, 멘 등에 영향력을 확보하게 된다.성은 15세기까지 여러 차례 성주가 바뀌다 16세기 프랑수아 1세의 총애를 받으며 프랑스 왕국의 전쟁자금을 관리하던 재정고문, 장 르 브르통(Jean Le Breton)이 성의 새 주인으로 바뀌며 요새에서 성으로 변신을 하게 된다.
장 르 브르통은 블루아성, 샹보르성, 쉬농소 성의 감독관으로 일할만큼 건축에 재능이 있던 사람으로, 왕을 위해 지었던 성들이 아닌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위해 성을 세우기로 결심한다. 이런 결심은 빌랑드리 성으로 표현되는데 그는 동종(Donjon)만을 제외하고 빌랑드리 요새를 허물고는 1536년에 당대 최신 유행이었던 화려한 르네상스 양식의 새로운 성을 세웠다. 특히 정원은 로마의 대사로 근무하며 조경을 취미로 배울 만큼 정원에 관심이 많았던 르 브르통의 야심작으로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것이다.
성은 르 브르통의 후손들에게 상속되다 1754년 카스텔란의 후작 미셀앙주(Michel-Ange de Castellane)의 소유가 된다. 미셀 앙주는 루이 15세의 대사로 활동하던 사람으로 성의 내부를 18세기에 유행하던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바꾸고, 정원도 크게 확장했다.
프랑스 혁명 동안에는 국가에 압류되었다가 혁명 후에 나폴레옹이 그의 형제 조셉 보나파르트에게 주었다. 그 후 정원은 19세기에 들어서며 영국식 정원으로 바뀌었다가 1906년에 스페인 출신 의사인 호아킴 까르바요(Joachim Carvallo)가 성을 매입하여 다시 본래의 르네상스 양식으로 복구하였다.
성의 주 건물은 위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ㄷ’자 모양이고, 성에 난 창문들과 층과 층사이의 수평의 띠, 아치형 회랑 등이 균형과 비례미가 조화를 이루며 르네상스 양식의 정수를 보여준다. 성의 내부는 18세기 가구로 장식되어 있고, 1층의 방들 중 3곳만 일반에게 개방 중이다. 2층의 전시실에는 16~18세기 스페인 학파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성 내부에서는 어디서든 정원을 바라볼 수 있도록 창문이 배치되어 있어, 아름다운 정원과 루아르 계곡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기하학적 패턴의 빌랑드리 정원
정원은 성주에 따라 16세기의 대칭을 강조한 구획과 도형학적인 요소가 강한 르네상스식 정원에서,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다시 영국식 정원으로 변천을 거듭하다, 20세기 초에 까르바요가 주인이 되면서 9만㎡에 달하는 르네상스 정원으로 자신의 모습을 찾게 되었고, 지금은 까르바요를 이어 그의 손자가 관리하고 있다.
세르강과 루아르 평원을 향해 자리하고 있는 정원은 계절에 따라 다채로운 색으로 무늬와 모양을 그리는 ‘장식 정원(Jardin d’Ornement)’, ‘물의 정원(Jardin d’Eau)’, ‘채소 정원(Le Potager)’으로 나뉘어져 있다. 성 남쪽 끝 호숫가에 배치된 ‘물의 정원’은 분수나 폭포를 위주로 펼쳐지는 정원으로 물이 주는 단순함과 평화로움이 명상의 공간의 느낌을 풍긴다.
‘장식 정원’은 성과 이어져 있는 정원으로 사랑을 주제로 ‘비극적인 사랑’, ‘덧없는 사랑’, ‘부드러운 사랑’, ‘격정적인 사랑’ 등 네 가지의 사랑을 기하학적인 식물배치로 표현해 아름다움을 뽐내며, 성채 서쪽의 언덕 벨베데레에서 내려다보면 섬세하고 정교한 아라베스크 문양의 작품을 보는 듯 멋스러움을 자아낸다. ‘채소정원’은 다양한 과실수와 채소들이 기하학적인 배치에 따라 심겨져 일반적인 정원에서 볼 수 없는 색다른 정원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다. 우리가 흔히 보는 호박, 상추, 양배추, 당근 등이 회양목이나 주목의 틀 안에서 화려한 꽃보다 더 화려하게 자라는 모습을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1934년 성은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역사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정원은 프랑스 문화부로부터 ‘주목할 만한 정원(Jardin remarquable)’으로 지정되어 보존 중이다.

Château de Villandry
주소: 3 rue Principale 37510 Villandry
Tél. : + 33(0)2 47 50 02 09http://www.chateauvillandry.fr/

- 성 개방시간
2/02-2/28 : AM 9:30 - PM 5:00
3/01-6/30 , 9/01 - 10/13 : AM 9:00 - PM 6:00
7/01-8/31 : AM 9:00 - PM 6:30
10/14-11/11 : AM 9:00 - PM 5:00
- 정원 개방시간
1/01-2/28 : AM 9:00 - PM 5:30
3/01-3/30 : AM 9:00 - PM 6:00
3/31-4/30, 9/16 -10/13 : AM 9:00 - PM 7:00
5/01-9/15 : AM 9:00 - PM 7:30
10/14-12/31 : AM 9:00 - PM 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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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G'S LIFE STYLE흥미와 감동이 잔잔했던 EPS 남불 여행 - 첫번째 장

08/10/2015

파리에 사는 이들에게 코트 다쥐르는 꿈이고 미련이다. 그 곳에서만 맡을 수 있는 향취는 미련이 되고 그 곳에서 누릴 수 있는 소담한 여유는 꿈이다. EPS 여행사에서 마련한 2박3일 남부 여행을 함께 떠났다. 그곳이 어디든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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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사는 이들에게 코트 다쥐르는 꿈이고 미련이다. 그 곳에서만 맡을 수 있는 향취는 미련이 되고 그 곳에서 누릴 수 있는 소담한 여유는 꿈이다. EPS 여행사에서 마련한 2박3일 남부 여행을 함께 떠났다. 그곳이 어디든 여행이라는 건 사람을 들뜨게 만든다.


역시 이렇게 역은 북적임이 있어야 기분이 좋다. 7-8월에 휴가를 가지 못했거나, 성수기를 피해 일부러 9월을 휴가 시기로 선택하는 이들이 아직 많다. 저들은 다 어딜가는 것일까

두시간 반을 달리면 첫번째 여행지 아비뇽에 도착한다. 렌트를 해야했기에 아비뇽 TGV에서 내렸다. 2011년에 완공된 아비뇽 TGV는 파리-아비뇽을 연결하는 역으로 무려 1999년 6월부터 2011년 6월까지, 2년에 걸쳐 건축되었다.

생각보다 굉장히 간편하고 빠르게 차를 렌트하고 달려간 곳은 당연 교황청 광장이다. 하늘도 높고 바람도 적당히 선선하다. 9월말의 쌀쌀하고 으슬함이 느껴지는 파리와는 다르게 햇살이 가득하다. 그 하늘 아래 서 있는 교황청은 역사가 기억하는 웅장함이 느껴지지만, 웬지 쓸쓸해보이기도 하다.

마치 먼 곳을 날아가듯 회전 목마에 몸을 맡겨보고 싶었다. 오랜만의 여행이라 그런가, 다시 동심의 세계로, 아비뇽의 하늘처럼 맑았던 그 때를 기억하고 있다. 사진으로 담는 그 모습은 내 눈으로 바라본 그 곳의 향취보다는 덜하다. 마치 움직이는 한폭의 그림같은 그 곳이 너무 아름답다.

아침부터 열심히 소화한 일정을 축하하기 위해 일명 "아는 사람만 찾는다는" 그 곳으로 발길을 향했다. LA FOURCHETTE는 1982년부터 현재까지 아비뇽의 "맛집"으로 통하는 유명 레스토랑이다.  고급 요리를 지칭하는 프렌치 가스트로노미와 비스트로 사이에 있어 Bistronomie음식을 하는 곳으로도 알려져있다. 집안 대대로 손맛을 자부하는 Philippe Hiely가 지휘하는 그의 작품은 음식이라기 보단 하나의 조각 같았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떠난 두번째 목적지는 후시옹, 붉은 흙내음이 연상되는 이 곳은 황토산이 많은 관광지다. 그 고운 모래를 만질 수 있는 오솔길도 마련되어 있다.  프랑스 정부가 선정한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중 하나인 후시옹은 구비구비 골목과 정감가는 작은 규모의 전형적인 프랑스 마을이다.

사진기를 갖다 대기만해도 한폭의 그림이 되는 후시옹을 뒤로 하고 떠난 곳은 실존주의 철학자, 알베르 카뮈의 흔적이 묻어난 중세 마을 루르마랭 (Lourmarin)이다. 실은 도착한 시간이 벌써 저녁시간이 가까워져서,성도 교회도 모두 문을 닫아 버렸고,  빠른 걸음으로 이곳저곳을 다녔야 했다. 조국 알제리의 향기를 찾을 수 있었다는 루르마랭의 미친 산책이었지만, 그가 테라스에 앉아서 마셨다는 파스티스, 그의 딸이 아직 살고 있다는 어느 집, 무작정 앉아서 축구 경기를 보기도 했다는 축구장까지, 그의 모습이 아직도 그려지는 듯 했다.

그의 채취를 뒤로 하고 이미 어둑해진 길을 달리니 니스가 나왔다. 이제 니스는 더이상 설명도 필요없는 도시가 됐다. 영국인들이 그렇게 사랑해서 붙여졌다는 "영국인들의 거리(Promenade des anglais)와 니스의 상징이 된 네그레스코 호텔까지, 별빛 아래 비치는 니스는 그야말로 눈이 호강하는 전경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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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G'S LIFE STYLEFREE ZONE - 돈 없어도 부끄럽지 않은

02/09/2015

더 이상 쓰지 않는 물건이나 옷을 바꾸는 일명 "물물교환" 모임이 늘고 있다. 집안을 싹 비우면서 쓸모없는 물건이나 안 맞는 옷을 판매하는 "중고 시장"도 마찬가지고, 자선 단체에 가져다주는 이들도 늘고 있다.그 여파에 힘 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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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쓰지 않는 물건이나 옷을 바꾸는 일명 "물물교환" 모임이 늘고 있다. 집안을 싹 비우면서 쓸모없는 물건이나 안 맞는 옷을 판매하는 "중고 시장"도 마찬가지고, 자선 단체에 가져다주는 이들도 늘고 있다.그 여파에 힘 잆어 "돈 없어도 부끄럽지 않게 당당하게 물건을 고를 수 있고 가져갈 수 있는" boutique이 생겼다.

12구에 위치한 "Siga-Siga"에는 책, 옷, 장난감, 주방용품, 생활용품까지 없는것이 없는 보물창고다. 하지만 부틱이라고 하기엔 한가지 없는것이 있다. 바로 계산대다. 손안에 백원도 없지만, 원하는 물건이 있으면 그냥 가져갈 수 있다. 2015년 6월에 생긴 "Siga-Siga"는 FREE-ZONE을 주장하는 "La boutique sans argent(돈 없이도 올 수 있는 부틱) 협회가 후원하고 있다.

이 곳에서는 돈이 물물교환의 목적이 아니다. 아직 누군가에게 쓸모가 있을법 한 물건이나 용품이지만 나에게는 더 이상 필요없는 것들을 버리지 않고 가져다 주면 된다. 혹시나 해서 찾는 물건이 있으면 이 곳을 들려 가져갈 수도 있다. 물건을 가져다 주는 대신 의무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물건을 가져갈 필요도 없다. "Siga-Siga"는 단지 물물교환의 공간이 아닌 커피와 차를 한잔할 수 있는 쉼터의 공간도 제공한다. 물론 그 가격마저도 주고 싶은만큼 주면 된다.

협회 "La boutique sans argent"은 어려운 경제 상황을 넘어서, 쓸모없이 버려지는 물건들이 늘어나는 것을 막고 필요한 물건이 있는 사람들과 그 물건들을 무료로 줄 수 있는 사람들이 함께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있다.

Siga-Siga
181 av Daumesnil 75012 Paris
지하철역 : Daumesnil (6호선/8호선)
월요일-토요일 : 10시~13시 / 14시~18시
웹사이트 : http://laboutiquesansargent.org/

Pour plus d'informations consultez le site in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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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g's Life Style감동의 물결이 출렁이는 마르세이유

21/08/2015

천가지의 매력을 가진 도시다. 거세게 불어대는 미스트랄에도 찡그리지 않을 수 있는건 바다를 품안에 안은 마르세이유만이 풍기는 향기가 좋기 때문이다. 예전에 이 곳에 살때는 바닷내음이, 마르세이유인들의 거칠지만 깊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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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가지의 매력을 가진 도시다. 거세게 불어대는 미스트랄에도 찡그리지 않을 수 있는건 바다를 품안에 안은 마르세이유만이 풍기는 향기가 좋기 때문이다. 예전에 이 곳에 살때는 바닷내음이, 마르세이유인들의 거칠지만 깊은 정이, 높은 하늘이, 빛바랜 듯한 옛스러운 골목길들이, 푸른색이 유난히 잘 어울리는 낭만이, 이렇게 좋은지 몰랐었다.

마르세이유는 기원전 600년 그리스 포카이아에서 넘어온 선원들이 처음 이 땅을 터전으로 삼으며 "포키스 도시"라는 이름을 가졌었다. 기원전 49년에는 시저왕으로 인해 로마의 땅 "마실리아(Massilia)"가 되었다. 1900년대 초, 일자리를 찾던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넘어오고, 알제리 전쟁이 끝나고는 HARKI들이 자리를 잡았다. 학교찾아 왔던 이들이 이 곳에 정착하고, 일자리 찾아 내려온 이들이 끝내 떠나지 못해 또 이 곳에 정착한다. 그래서 진정한 마르세이유인은 없다고들 한다. 모두 어딘가에서 몰려든 이들이 이 땅에 청착하면서 "마르세이유인"이 되가는 거다. 지금에 와서도, 여전히 내 마음이 그 곳을 향하고, 이 곳에서 가졌던 추억에 대한 미련이 큰 이유는, 나도 그 시간동안 한국인도 아니고, 프랑스에 사는 이방인도 아닌 그냥 "마르세이유인"으로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상하게 험하고, 위험한 곳 많다고 소문 난 곳이지만, 마르세이유는 세계 건축 거장들이 만들어낸 작품같은 건축물들과, 문화 거장들이 만들어내는 공연 및 기획전들이 많이 열리는 곳이다. 오랜 역사와 유명한 구항구 생선 마켓, savon de marseille(마르세이유 비누), 세계 유명 박물관들까지, 전 세계 여행객들의 발걸음이 이 곳에 닿을 수 밖에 없다.

2013년 유럽 문화 수도로 선정되 "마르세이유-프로방스 2013"으로 한 이름 떨쳤는데, 이를 위해 건축 거장들이 박물관을 설계하고, 시 차원에서 도시 설계를 재 정비해 죽어가던 항구라 불렸던 Joliette 마을이 비즈니스 구역으로 새로이 빛을 보고 있다. 
안타깝게도 완성되기 전에 이 곳을 떠난 까닭에 이 하나만으로도 해안의 풍경이 새로워졌다는 MUCEM(마르세이유 국립 지중해 박물관)을 실제로 한번도 보지 못했었다. 이번엔 꼭 보리라 생각하고, 마르세이유에 발을 닿자마자 무작정 걸어 이 곳으로 왔다.

17세기때부터 마르세이유를 지켜온 요새 "생-장(Saint-Jean)의 끝에서부터 연결되는 바다 위 다리를 건너면 약 9천평의 부지위에 세워진 박물관이 등장한다. 드넓은 지중해와 그 바다를 품고 있는 마르세이유를 연결해 주는 듯 하다. 이 곳으로 연결된 오직 하나의 다리인 "하늘 다리"를 건너는 기분은 짜릿할 수 밖에 없다. 발 아래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지중해의 에메랄드 빛 바다의 물결이 끝나듯 부두에 부딪히는 소리가 나고, 위로는 거침없이 불어오는 미스트랄이 불어온다. 

마치 바다인들이 매일같이 다듬는 그물을 연상시키는 건물은 세계적인 거장 루디 리시오티(Rudy Ricciotti)가 맡았다. 바다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도시, 마르세이유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지중해이기에 이 박물관이 땅과 바다를 연결해주는 유일한 통로로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문화의 공간이기에 이 곳에서 열리는 지중해 문명을 알리는 기획 전시는 훌륭할 수 밖에 없다.
마르세이유 인들은 손이 크단다. 목소리도 크고, 정도 깊다. 그만큼 일명 "통 큰" 사람들이다. 시원시원하지만, 여린 마음과 깊은 정을 뿜어내는 이 사람들은 마르세이유를 꼭 닮았다.


ⓒ 2015. (EPS 송은희)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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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진의 여행 칼럼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의 대저택, 빌사뱅 성

20/08/2015

빌사뱅 성(Château de Villesavin)은 루아르 강의 지류인 뵈브롱 (Beuvron) 강변에 세워진 성으로 샹보르 성과 이웃하고 있다. 성은 이탈리아식의 대저택으로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미가 뛰어나며, 성 한쪽에 자리한 결혼박물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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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사뱅 성(Château de Villesavin)은 루아르 강의 지류인 뵈브롱 (Beuvron) 강변에 세워진 성으로 샹보르 성과 이웃하고 있다. 성은 이탈리아식의 대저택으로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미가 뛰어나며, 성 한쪽에 자리한 결혼박물관에서는 프랑스의 19세기 전통혼례를 볼 수 있다.

빌사뱅 성의 역사
빌사뱅 성은 루아르 계곡의 고성들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빌랑드리 성의 새 주인이 되어 중세 요새를 대대적인 건축을  통해 아름다운 성으로 탈바꿈 시켰던 장 르 브르통(Jean le Breton)이 지은 성이다. 장 르 브르통은 프랑수아 1세의 재정고문으로 전쟁자금의 관리 감독관으로 일했던 사람이다. 프랑수아 1세가 이탈리아, 신성로마제국 등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며 원정을 다닐 때 전쟁자금을 관리하는 일이 중요했던 만큼 브르통의 세력도 탄탄했다. 또한 그는 프랑수아 1세와 각별한 인연이 있던 사이로, 1525년 파비 전투(bataille de Pavie) 중에 프랑수아 1세와 같은 요새의 감옥에 갇혀 지냈다.감옥에서 풀려난 후에 프랑수아 1세는 샹보르 성의 건축 자금 관리를 그에게 맡길 정도로 그를 신임하며 가까이 했다. 그는 이런 자신의 막강한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왕족이나 귀족들이 루아르에 고성을 지을 때 자신도 빌랑드리 성에 이어 샹보르 성 인근에 빌사뱅 성을 지을 계획을 세웠다. 이것을 안 프랑수아 1세는 빌사뱅 성을 짓기 위한 토지를 하사했고, 샹보르 성의 건축에 참여했던 프랑스와 이탈리아 건축가들과 인부들이 성을 건축하게끔 허락해주었다. 성은 최고의 팀이 함께하며  1517년에 시공하여 1537년에 완성되었고, 그렇게 완성된 성은 샹보르의 작업의 집 (La Cabane de chantier de Chambord)으로 불리기도 했다. 장 르 브르통이 죽은 후에는 앙리 4세의 자문이었던 귀족가문이었던 장 펠리포(Jean Phélippeaux)의 가문이 성주가 되었다. 이후로 백작, 공작 등 귀족 가문에서 소유를 하며 주인이 바뀌다가 현재는 스파르(Sparre)가 주인이다

빌사뱅 성의 뛰어난 건축미
숲에 둘러싸여 있는 빌사뱅 성은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의 영향을 크게 받아 세워진 건축물로, 프랑스식의 구조와 장식과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성의 구조부터 이탈리아 양식을 따라 중앙 건물은 ‘ㄷ’자 모양이고, 그 양옆의 건물들은 ‘ㅁ’자 모양으로 배치되어 균형미가 뛰어나다.성 내부도 이탈리아 풍이 적용되어 중앙 건물 1층은 바닥이 지면보다 약간 높게 지어졌고, 2층은 천장이 높은 피아노 노빌레 (piano nobile, belétage)이다. 피아노 노빌레는 대저택이나 궁전의 주요 층으로 응접실 및 거실이 잇는 곳으로 보통 2층에 자리하며 천장이 높고 넓은 것을 일컫는 용어이다. 이탈리아의 대부분의 건물 1층이 사무실, 가게, 창고 등으로 쓰이고, 2층은 응접실로 손님을 맞이하고 가족이 머무는 중요한 공간인 만큼, 건축이나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3층은 침실 등으로 사용되었다. 빌사뱅 성도 이 방식을 적용하여 응접실이 넓고, 천정이 높으며, 장식도 이탈리아 양식을 따라 화려하고 아름답다. 안마당은 건물의 모양처럼 사각형으로 단정하게 잘 다듬어져있고, 연못도 직사각형 모양으로 질서정연한 느낌의 균형미와 절제미가 살아있다. 성에는 그 밖에도 퐁텐블로파의 영향을 받은 17세기 그림들이 있는 예배당, 결혼박물관, 마차박물관 그리고 농장이 있다. 

결혼박물관(Musée du Mariage)
결혼 박물관에는 1840년 대 이후의 프랑스의 결혼 풍경과 변천사를 볼 수 있는 1500여점의 물건들이 전시 중이다. 결혼박물관의 소장품은 브르타뉴의 몽돌(Mont-Dol)에서 가져온 것을 중심으로 35년 동안 수집해 온 것이다. 1968년 전까지 프랑스 사람들에게 결혼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가족들은 완벽한 결혼식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랫동안 결혼식 준비를 하고, 신부 측이 준비하는 혼수품은 최고의 정성이 담긴 것으로 섬세하니 아름다워야 했다.신부의 화관은 신부 어머니들의 희망과 소망이 담긴 것으로, 부부의 해로, 사랑, 행복, 평화를 기원을 담는 것으로 현재 박물관에는 350여점이 소장되어 있다. 혼례의 방에는 1850녀부터 1950년 사이의 아름다운 전통 결혼 의상들이 있고, 밀랍으로 재연한 결혼 피로연 장면은 프랑스 전통 혼례를 실제로 보는 듯 실감나게 표현되어 시선을 끈다. 

마차 박물관 (Musée de voitures hippomobiles et d’enfants)
성의 옛 마구간에 소장하고 있는 마차들은 아주 중요한 컬렉션들로 19세기에 제작된 것들이 주를 이룬다. 사람들의 운송수단이자, 상인들의 장거리 운행과 물품을 나르던 마차는 주로 마차가 끌던 것이고, 아이들의 산책용 마차는 염소, 양, 개들이 끌던 것이다

농장 (Ferme des petits)
작은 농장은 가족과 함께 성을 방문하러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로 염소, 양, 소, 토끼, 닭, 당나귀 등 다양한 동물들을 볼 수 있는 기회로, 아이들이 직접 동물들에게 먹이를 줄 수도 있다. 

 

빌사뱅 성 (Le Château de Villesavin)
주    소 : Château de, Villesavin, 41250 Tour-en-Sologne
전화번호 : 02 54 46 42 88
개관시간 : 10:00 – 19:00
http://www.chateau-de-villesavin.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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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g's Life Style도심에 위치한 맛과 힐링의 정원 LE PATIO - 엑상 프로방스

12/08/2015

Le patio-aix en provences 도심에 위치한 맛과 힐링의 정원파리를 떠나는것만으로도 자유를 얻는 것 같았다. 남들은 그렇게 한번 와보려 노력하는데 너는 왜 그곳을 떠나려하냐는&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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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patio-aix en provences

도심에 위치한 맛과 힐링의 정원

파리를 떠나는것만으로도 자유를 얻는 것 같았다. 남들은 그렇게 한번 와보려 노력하는데 너는 왜 그곳을 떠나려하냐는 친구의 핀잔도 즐겁기만 했다. 글쎄, 그 남들은 파리를 여행으로 오지만 나에게는 이 파리가 내 지친 일상의 무대여서 그렇지 않을까 싶다.

이 곳을 벗어나기 위해 정착지로 삼은 곳은 엑상 프로방스. 엑스에 있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충분해졌다는 세잔의말처럼, 그 곳에서 또 다른 꿈을 꾸고 싶었다. 작은 규모지만 살아있는 역사책이라 불릴만큼 문화, 예술, 건축에있어 프로방스의 으뜸이다. MGALLERY ROI RENE 호텔에 짐을 풀고, 오랜만에 여유롭게, 한입 한입 음미할 수 있는 저녁 식사를 가지고 싶었다.

해서...찾은 곳은 Le patio. 이미 쉐프의 창의력과 솜씨가 입소문을 탄 곳이다. 화려하지 않은, 단순하지만, 아기자기 한 인테리어부터 마음에 들었다.

엑상 프로방스를 많이 닮은 레스토랑이다. 작지만 소박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오히려 일명 '여유로운 럭셔리 라이프'를 즐기는 이들이 즐겨 찾는 곳 같았다. 엑상 프로방스에서 원없이 즐길 수 있는 미로같은 한 골목에 위치한 Le Patio의 내부는 따뜻한 빛이 가득한 인테리어다. 
넓지는 않지만 인티미스트한 구성으로 내 집에서, 친구네 집에서 또 연인의 집에서 오직 나를 위한 음식을 맛보고 있는 듯 하다. "창의성으로, 손맛으로 Le Patio를 닮은 오감을 불러일으키는"음식을 먹는 곳이다. 관광객들만이 붐비는 곳이 아닌, 이 곳에 사는 이들에게도 인기가 있는 이유 일것이다. 

 

Patio(집 안뜰이라는 뜻)에 들어서면 Le Patio의 안주인 Sophie와 아들 Nicolas가 메뉴와 타프나드를 가져다 준다. 엑상 프로방스의 골목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녔던터라 배가 고팠는지, 메뉴 설명을 들으면서 헤치워버렸다.

Le Patio 쉐프 디디에는 미슐랭 원 스타 쉐프 브느와 샤르베(Benoit Charvet)와 함께 일했던 경력도 있어 실력과 손맛에 있어 뒤지지 않는다. 모든 음식은 그가 직접 재료 선택부터 시작한다. 이 곳에서 잊지 않고 먹어야 하는 메뉴는 스타터 아티초크 스튜(Ragout de coeurs d'arrtichaut)인데, 빵을 찍어먹으면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맛이 일품이다. 

나는 면킬러 답게 누들 새우 웍(Wok de grosses Crevettes en Persillade, Citronelle et Nouilles Chinoises)을 선택했다. La Patio의 모든 음식처럼 프랑스 남부의 전형적인 향내음이 풍겨지는 듯 했다.
홀 서비스는 완벽했다. 파리에 살면서 서비스 정신 제로에 물 들어 있었는지, 때때로 와서 살펴주는 모습이 좋았다. 물이 없는지, 빵이 모자라는지, 음식은 맛나는지, 그 많은 손님들을 일일이 신경쓰고 있었다.


 

ⓒ 2015. (EPS 송은희) all rights reserved

[출처] 간단한 올바른 저작권 표시 팁. copyright (☆게임만들기 - CrazyGameMakers!☆) |작성자 흐뉴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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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진의 여행 칼럼시농 성, 잔 다르크와 샤를 7세의 만남

06/07/2015

시농 성(Château de Chinon)은 비엔 강과 다리 건너 마을을 굽어보며 자리한 성으로, 유유한 세월에 녹아내린 벽들로 황폐한 모습을 드러내는 요새 성이다. 이처럼 낡아가고 허물어져가는 성을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이유는 백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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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농 성(Château de Chinon)은 비엔 강과 다리 건너 마을을 굽어보며 자리한 성으로, 유유한 세월에 녹아내린 벽들로 황폐한 모습을 드러내는 요새 성이다. 이처럼 낡아가고 허물어져가는 성을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이유는 백년 전쟁 때 ‘프랑스를 구하라’는 신의 계시를 받은 잔 다르크가 샤를 7세를 회견한 곳으로 중요한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농성의 역사
마을의 광장을 지나 성으로 가는 표지판을 따라가다 보면 성의 입구에 엘리베이터가 기다리고 있다. 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바로 성으로 들어 갈 수 있는 티켓 판매소에 도착하게 된다. 시농 성은 블루아 백작이었던 테오발 1세(Theobald 1)에 의해 954년 요새로 세워졌다. 그 후 12세기에 앙리 2세가 이곳에 체류하며 성의 많은 부분을 개축했고, 앙리 4세 때는 감옥으로 사용하다 나폴레옹 3세 때 부분적으로 이전의 성으로 다시 복구했다. 그러나 440여개의 방이 있을 정도로 루아르 계곡의 고성 중에서 가장 큰 성이지만, 프랑스 대혁명 때 약탈을 당해 지금은 대부분의 방이 비워있으며 건물은 허물어 가는 중으로 옛 영화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지극히 소박한 자연스러움이 남아있다.성은 동쪽에 있는 조르쥬 요새(Fort St. Georges), 가운데에 있는 밀리외성(Château du Milieu), 서쪽에 있는 쿠드레 요새(Fort du Coudray) 등으로 나뉘며, 쿠드레 요새는 템플 기사단원들의 막대한 재산과 권력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필립 4세가 이단과 부도덕이란 죄목으로 템플 기사단원들을 잔인하게 탄압했던, 1307년에 기사단원들이 유폐되어 있던 곳이다. 그 때의 흔적은 기사단원들이 새겨놓은 벽의 낙서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밀리뢰 성 옆에는 성을 지키며 사냥에 동행하던 황실견의 사육장으로 사용하던 개 타워 (tour des chiens)가 있다. 

시농 성에서의 잔 다르크와 샤를 7세의 만남
백년전쟁은 1337년부터 1453년까지, 116년 동안 영국과 프랑스 간의 전쟁으로 이 기간 동안의 휴전과 전쟁이 반복되었지만, 프랑스가 전쟁터였다. 긴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가던 프랑스에서 전쟁이 종결 될 수 있던 것은 잔 다르크의 출현 덕분이다. 잔 다르크는 1429년 3월 8일, "프랑스를 구하라"라는 신의 계시를 듣고 자신이 태어난 알자스-로렌 지방의 작은 마을인 동레미(Domrémy)에서부터 시농 성까지 400km가 넘는 거리를 달려왔다. 시농 성에 온 이유는 왕세자 샤를 7세가 있었기 때문이다. 샤를 7세는 샤를 6세의 아들로, 어머니인 이사보가 왕의 동생 오를레앙공과 관계를 맺어 태어났을 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받아 영국 왕 앙리 5세에게 왕위계승권이 돌아가자 상심하여 시농 성에서 세상과 멀리하며 살고 있었다. 샤를 7세는 신의 계시에 따라 자신을 만나러 잔 다르크가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녀가 도착했을 때 화려한 의상을 입은 가짜 왕자를 세우고는 자신은 허름한 옷으로 변장을 하고 신하들 사이에 서 있었다. 잔 다르크는 한 번도 보지 않은 샤를 7세지만 가짜 왕세자는 쳐다보지도 않고 변장하고 있는 왕세자 앞에 무릎을 꿇어 왕과 신하들을 놀라게 했다. 이 날이 1429년 3월 8일이다. 이 역사적인 날 잔 다르크는 자신감 없는 샤를 7세를 설득하는데 성공해 군사를 이끌고 영국군과 싸워 오를레앙에서 첫 승리를 거두며 루아르 강 유역을 지켜냈다. 이 승리를 시작으로 승승장구하던 잔 다르크 군대는 큰 전투 없이 랭스에 입성했다. 랭스는 전통적으로 프랑스 왕들의 대관식을 치르던 곳으로 잔 다르크의 힘에 의해 샤를 7세는 이곳에서 대관식을 치르고 정식 프랑스 왕위에 오르게 된다. 이 때 샤를 7세는 잔 다르크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원하는 것을 물었고, 그녀는 고향인 동레미 마을의 세금을 영구히 면제해 줄 것을 청했다. 이때 받은 면세 특권은 왕정이 폐지 될 때까지 유지되었다. 그러나 샤를 7세는 잔 다르크가 영국군에게 잡혀 루앙 광장에서 마녀로 몰려 화형을 당했을 때 모른 척 하던 비겁한 왕이었고, 마녀가 자신을 왕으로 만들었다는 오점을 남기지 않기 위해 전쟁이 끝난 후에 마녀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명예 회복 재판을 열도록 했던 이기적인 왕이기도 했다. 이런 왕의 이기심은 잔 다르크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지금 잔 다르크는 가톨릭의 성녀로, 프랑스의 수호성인으로, 여군과 걸 스카우트의 수호성인으로 기려지고 있다. 잔 다르크 축일은 매년 5월 30일로 첫 승리를 거둔 오를레앙에서는 잔 다르크를 ‘오를레앙의 처녀’로 부르며 5월 30일에 맞추어 성대한 축제를 해마다 연다. 시농 성에는 오를레앙 같은 큰 축제는 없지만 성을 거닐다 보면 황폐하게 무너져 내리는 세월이 소곤소곤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길에는 두 갈래의 길이 선택이란 이름으로 놓여 있고,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열망이 남아있으며 만약 그 길로 갔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 속에 미련을 두기도 한다. 이러한 세월이 소리로 흐르는 것이다. 샤를 7세가 끝내 잔 다르크를 믿지 않고 군대를 내어주지 않았다면 지금 프랑스는 영국군 아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인 것처럼. 가보지 않은 길, 남들이 가보지 않았던 길, 그런 길이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하는 생각을 따라 성 아래 자리한 마을로 들어서면 운치 가득한 오래된 가옥들이 즐비하다. 이 가옥들 1층에는 와인가게와 과자점 등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들어서 있어 눈이 즐겁다. 마을을 돌고 와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19세기 말의 와인 제조 과정을 볼 수 있는 와인박물관을 찾아 방문해도 유익한 시간이 될 것이다. 


*글 : 여행 칼럼리스트 조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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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진의 여행 칼럼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말년을 보낸, 클로 뤼세 성

06/07/2015

앙부아즈 성 근처에 자리한 클로 뤼세 성(Château du Clos Lucé)은 화가이자 조각가, 발명가, 건축가, 기술자, 해부학자, 식물학자, 도시 계획가, 천문학자, 지리학자, 음악가로 당대 최고의 천재였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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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부아즈 성 근처에 자리한 클로 뤼세 성(Château du Clos Lucé)은 화가이자 조각가, 발명가, 건축가, 기술자, 해부학자, 식물학자, 도시 계획가, 천문학자, 지리학자, 음악가로 당대 최고의 천재였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1516년부터 1519년까지 생애 마지막 3년을 보낸 곳이다. 

 

이곳에는 클로 뤼세 성이 지어지기 전 12세기 초에 투렌의 영주였던 위그 당부아즈(Hugues d'Amboise)가 건립한 작은 성채가 있었다. 1471년 프랑스 왕 루이 11세가 이 성채를 자신이 신임하던 에티엔 르 루(Etienne le Loup)에게 하사했다. 에티엔은 부엌에서 잡일을 하던 소년이었지만 왕의 사랑을 받아 귀족이 될 정도로 루이 11세가 아끼던 신하로, 루이 11세는 성채와 함께 천여 마리의 비둘기를 사육할 수 있는 거대한 탑도 함께 주었다. 중세 시대 때는 비둘기 분뇨를 비료로 사용하던 시절로, 비둘기가 많으면 많을수록 봉토가 크다는 의미로 부와 권력의 상징이기도 했다. 
1490년경에 샤를 8세가 에티엔으로부터 성채를 사들여, 화려한 르네상스 양식의 왕실로 성을 개축하고 예배당도 세워 왕비 안 드 브리타뉴에게 선물했다. 둘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어린 나이에 죽자 슬픔에 빠진 안 드 브리타뉴를 위로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후 성은 프랑수아 1세의 어머니인 루이즈 드 사부아(Louise de Savoie)의 소유가 되었고, 1516년 프랑수아 1세는 인문학과 예술에 관심이 많던 누이 마르그리트의 청을 받아들여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이곳으로 초청해 머물게 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앙부아즈 성과 클로 뤼세 성에서 머물며 프랑수아 1세로부터 매년 은화 700냥을 후원받아 생활하며, 루아르 강에 자리한 고성들의 설계를 돕고 다양한 실험과 연구를 하면서 창작활동을 했다.  이때 이탈이아에서 올 때  미완성으로 가져왔던 ‘모나리자’, ‘세례 요한’, ‘성 안나와 성 모자’를 다시 그리기 시작해 ‘모나리자’와 ‘성 안나와 성모자’를 완성했다.  
다 빈치는 1519년 67세의 나이로 프랑수아 1세의 품 안에서 세상을 떠났고 다 빈치의 영원한 휴식처는 앙부아즈 성에 자리한 생 튀베르 성당이다. 그는 프랑스에서 산 3년 동안 프랑스인들에게 세계 최고의 화가, 발명가, 기술자, 건축가로 존경받으며 편안한 여생을 살았다.
클로 뤼세 성은 세월 따라 성의 주인이 바뀌며 황폐해지다 1854년부터 프랑수아 생 브리스(Francois Saint Bris) 가문이 성의 주인이 되면서 복원되었고, 관리되기 시작했다. 1954년부터 프랑수아 생 브리스 가문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유산을 알리기 위해 일반에게 공개했고 성은 현재 프랑스 역사문화재로 보존 중이다.

 

아담하고 단아한 클로 뤼세 성

성으로는 규모가 작고 아담한 클로 뤼세성은 남색 지붕과 장밋빛 벽이 르네상스 양식의 화려함과 화사함으로 아름다운 배합을 만들며 독특한 건축미로 시선을 끄는 인상적인 건물이다.  
성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ㄷ’자 형태로 된 3층 건물로 성 내부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흔적을 복원한 다빈치의 침실, 갤러리, 마르그리트 드 나바르의 방, 안 드 브루타뉴의 예배당, 살롱, 대형 홀, 주방, 모형실과 외부 정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부의 공간은 고풍스런 르네상스 양식의 가구와 17세기 태피스트리로 장식되어 있고, 이곳에서 볼 수 있는 다 빈치의 발명품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구상하거나 발명한 것들을 IBM사가 후원해 제작된 것이다. 
예배당은 샤를 8세가 아들을 잃고 슬픔에 잠긴 왕비를 위해 특별히 세운 곳으로 예배당의 기도실 벽면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 제자들의 그림들이 걸려있다. 그림들 중에서는 출입구 위의 ‘빛의 성모(Virgo Lucis)’라는 그림이 유명하다. 
지하 계단으로 이어지는 문은 클로 뤼세 성에서 약 500m 가량 떨어진 인근의 앙부아즈 성과 연결되는 비밀 통로이다. 성을 감싸고 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공원은 다 빈치가 산책하던 녹지대로 아늑하고 편안한 공간으로 다 빈치의  발명품을 전시한 야외 박물관이다. 


*글 : 여행 칼럼리스트 조미애*

 

 

Château du Clos Lucé - Parc Leonardo da Vinci
Demeure de Léonard de Vinci
주소 : 2 rue du Clos Lucé 37400 Amboise
전화: 33 (0) 2 47 57 00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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