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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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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의 집_Maison et Atelier de Jean Francois Millet

퐁텐블로 숲에 인접한 인구 1,800명의 작은 마을로 1822년 코로(J .-B . Camille Corot), 루소(Théodore Rousseau), 그 후 밀레(Jean François Millet) 등이 모여들면서 화가들의 마을로 바뀌게 되었다. 이곳에서 화가들은 자연 및 농촌 생활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화폭으로 옮기면서 바르비종 파를 탄생시켰다. 장 프랑수아 밀레의 아틀리에 겸 집과 테오도르 루소의 집을 방문할 수 있다. 1849년 바르비종에 정착한 후 이곳에서 생을 마감한 밀레는, 농부였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관찰자 입장에서 농촌의 풍경과 자연의 모습을 담았다. 농민의 삶과 노동의 신성함에 초점을 맞추어 인간의 내면을 담아내는 그의 작품에서는 고요하고 경건하며, 자연을 향한 철학적 성찰을 담고 있다고 하여 밀레는 종교 화가로 불렸다. 그의 생가는 현재 밀레 기념관 (Maison et Atelier de Jean Francois Millet)으로 개방되어 있는데, 이곳에서 그 유명한 <이삭줍기>, <만종> 등의 걸작이 완성되었다. 들어서자마자 밀레의 흔적들이 밀집적으로 전시되어 있는데, 밀레 작품의 소재가 되었던 바르비종 사람들의 사진, 동료 작가들의 사진, 그리고 그의 사진과 작품들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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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모네의 집_Maison de Claude Monet

지베르니는 인상파의 대부 클로드 모네가 1883년부터 1926년 임종까지 43년을 보낸 곳이다. 그는 이곳에서 현대 미술의 새로운 도전을 보여주었고, 거대한 작품 <수련>을 완성한다. 화가이자 정원사인 모네는 꽃에 미쳐 봄부터 가을까지 꽃이 주는 자연의 색깔에 심취하여 다양한 색깔의 팔레트를 썼다고 한다. 1893년 집 앞마당에 수련이 피는 작은 연못을 만들고 동양식 교각을 설치하며 색깔에 대한 빛의 효과에 대해 더 깊이 연구하며 계속 그림을 그렸다. 지베르니에서 예술의 생을 마감하며 유언처럼 남겨 놓은 <수련> 연작으로 20세기의 가장 주목받은 예술가의 자리에 선 모네를 찾아 오늘도 꽃 피는 계절이 되면 전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 지베르니에 모여들고 있다. 모네는 당시 인상주의 화가들처럼 동양문화 특히 일본 문화에 큰 매력을 느껴 일본을 직접 방문해 일본의 판화, 그림을 접하면서 동양의 문화를 터득했다. 정원에도 동양의 정서를 반영하기 위해 애썼는데, 정원 건너편으로 보이는 초록색 다리는 거대한 버드나무가 잎을 떨어뜨리고 있는 등 식물의 구성도 동양적으로 구성했으며, 연못과 다리의 배치는 한눈에 봐도 일본 정원의 느낌이 나게 꾸며 놓았다. 이 때문에 특히 일본인 관광객들이 붐을 이루는데, 특히 날씨가 좋은 때의 휴일이나 주말에는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로 붐벼 표를 구매하기 위해 긴 줄을 서야 하므로 가급적이면 한산한 아침 일찍 도착하는 것이 좋다. 그의 주요 작품은 유명한 <수련>을 비롯하여 마르모탕 클로드, 오르세 등에 전시되어 있다. 11월부터 3월은 정원관리 기간으로 문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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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고흐의 작품인 오베르 교회_L'église d'Auvers

파리를 떠나 오베르 쉬르 와즈 방향으로 가는 풍경은 우리에게 인상파 회화 작품들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와즈 강을 건너면서 정면에는 반 고흐에 의해 불멸화된 성당이 고흐의 강렬한 색깔을 벗고 회색빛 옛 성당의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서 고흐가 그렸던 시청사와 고흐가 묵었던 라부 여관(Auberge Ravoux)이 나타난다. 라부 여관은 고흐의 집(Maison de Van Gogh)으로 불리며, 고흐가 마지막 생애 2개월 머물렀던 고흐의 하숙집으로 이곳에서 숨을 거두었다. 현재 ‘고흐의 집’으로 개방되어 있으며, 3층은 고흐가 묵었던 방, 2층은 고흐 기념품 가게, 1층에는 레스토랑이다. 고흐의 집의 입구와는 달리 대로변의 여관(auberge)에는 현재도 식당으로 운영 중이고 예약이 필수이며, 수~일요일 점심과 금, 토요일 저녁을 들 수 있으며 전화나 메일로 예약을 하는 것이 좋다. 고흐의 집 옆길로는 인상파의 선배인 도비뉘의 저택과 그의 박물관이 있다. 언덕가로 가다 보면 예술가들의 만남의 장소였고 고흐도 초상화를 그렸던 의사 가쉐 박사의 집이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남프랑스를 떠나 가쉐 박사의 치료를 받기 위해 이곳에 둥지를 틀었던 고흐는 3개월 후 권총 자살하고 이곳 들판 곁의 공동묘지에 묻힌다. 고흐에게 사랑으로 평생 경제적 원조를 하며 따랐던 동생 테오는 고흐의 죽음 이후 얼마 후 숨을 거두었고 고흐의 묘지 옆에 묻혔다. 고흐의 집은 1년 중 3월 초순에서 11월 하순까지만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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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 라 포레 마을 전경 _ Milly la Forêt

파리에서 남쪽으로 50km 떨어진 마을인 밀리 라 포레(Milly-la-Forêt) 위치한 이 집은 미이라포레 성에 속하였던 부속 저택으로 18세기의 루이 13세 스타일의 저택이고 2헥타의 정원이 있다. 1947년부터 그가 세상을 떠난 1963년까지 쟝 콕토가 살았던 곳이다. 장 콕토는 파리에서의 화려하고 사교적인 생활에서 벗어나 자연과 함께 소박하고 조용한 삶을 때로 찾기 위해 일종의 피난처로 그의 친구 배우 쟝마레와 같이 이 집을 1947년에 구입한다. 쟝 콕토는 시인, 작가, 연출가, 시나리오 작가, 도예가이자 디자이너였던 다재다능한 사람으로 그가 거주하였던 이 집에는 그를 기억할 수 있는 가구와 친구 예술가들의 오브제들, 피카소(Picasso), 베라르(Bérard), 워홀(Warhol), 모디글리아니(Modigliani), 맨 레이(Man Ray)의 작품들 등 자취들이 가득하다. 특히 피카소, 음악가 에릭 사티(Satie)등와 같은 세계적인 예술계 인사들이 모여들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브 생 로랑의 평생 동반자 피에르 베르제가 이 집을 구입하여 복원 후 2010년 6월부터 대중에게 오픈되었다. 프랑스 남부의 망통(Menton) 마을에는, 벨기에 출신 미국인인 미술 수집가 세브린 분더만(Sevrin Wunderma)의 기부에 의해서 지어진 장 콕토 미술관(Musee Jean Cocteau - Collection Severin Wunderman)과 쟝 콕토의 회화가 중점적으로 전시된 또 다른 쟝 콕토 박물관(Musee Jean Cocteau)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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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크리스토 성, 알렉상드르 뒤마의 성 _ Château de Monte-Cristo

삼총사(Les Trois Mousquetaire)와 몬테 크리스토 백작 (Le Comte de Monte-Cristo) 소설의 성공 이래, 소설가 알렉상드르 뒤마는 소설 작업을 조용히 이어나갈 수 있는 거처를 파리에서 서쪽으로 떨어진 경치가 아름다운 한 언덕에 마련하게 된다. 영국식 정원의 둘러싸고 있는 공원과 함께 자신의 꿈의 집을 실현한 몬테 –크리스토 성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건물 전체가 조각이 되어 있으며 다른 장식품들과 함께 작가의 영혼이 깃든 집이라 할 수 있다. 이 집에서 작가는 화려한 파티와 만찬을 개최하며 그 시기의 유명인사를 초대하곤 했는데 그의 사치스러운 삶을 지탱하느라 1848년부터 빚쟁이들에게 시달려 이 저택과 가구 및 컬렉션 오브제를 연후 팔아야만 했고 결국 이 집을 떠나 벨기에로 망명을 한다. 그 이후 여러 다른 집주인들이 성을 거쳐 가면서 거의 폐허로 되어 이 저택을 부수고 아파트 단지를 만드는 부동산 프로그램 이 1960년에 발표가 되자 역사가 알렝드꼬를 중심으로 알렉산드르 두마 재단을 만들어 없어져 갈 문화재를 살린다. 특히 모로코의 왕의 후원으로 저택이 리모델링 되고 특히 이곳의 유명한 아랍 스타일의 살롱을 재건해 옛 모습을 찾아 1994년부터 방문객에게 오픈이 되었다. 소설가 알렉상드르 뒤마로서의 삶을 만든 젊은 시절 및 그의 물품들, 소장품들을 중심으로 상설 전시도 열리는 이곳은 센강이 내려다보이고 아카시아 꽃향기가 널리 퍼지는 아름다운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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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라벨의 집-박물관_Maison-Musée Maurice Ravel

파리의 서쪽 방향의 몽포르-라모리( Monfort-l’amaury)라는 마을에는 프랑스 유명 작곡가 모리스 라벨(1875-1937)의 벨베데르라고 불리는 집이 있다. 클로드 드뷔시와 더불어 20세기 초 음악가의 거장으로 불리는 라벨은 1921년부터 그의 마지막 해인 1937년까지 이곳에서 여생을 보내었다. 세계적인 음악가로 추앙받는 라벨은 1921년 이후 거의 모든 작품을 이곳에서 작곡했는데 그 유명한 볼레로도 이곳에서 작곡이 되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저택은 동생이 유산으로 받아 관리하였고 유명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거버넌트가 관리를 하다가 동생이 생을 마칠 때 국립 박물관 협회에 기증하면서 박물관이 되었다. 저택의 겉모습도 음악가의 수줍고 소박한 성격처럼 화려하지 않으나, 내부로 들어서면 곧 발코니의 다이닝 룸에서 내려다보이는 웅장한 랑부이예 숲 전경에 감동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방문이 허용되는 작가나 예술가의 집들은 사후에 새로이 장식된 집들이 많은데 라벨의 집은 작곡가가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서 작가의 자취를 느낄 수 있다. 서재, 응접실, 음악실 그리고 그의 침실까지도 그가 사용하던 가구로 현재까지 제 모습을 가지고 있고 그가 작곡을 하던 에라드(Erard) 피아노가 아직까지도 그대로 놓여 있다. 가이드의 설명과 함께 방문할 수 있는 관람은 예약을 해야 하고, 가이드 수반 시 인원은 한 번에 6명까지 인원이 제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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